호는 지산(志山). 충청북도 음성 출생. 1910년 대종교(大淙敎)에 봉교(奉敎)하였고, 1912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에 들어갔다.
1918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대표로 김규식(金奎植)을 파견하기로 함에 따라 그 여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군자금 1만 4,000원을 간도 노령(露領)에서 인수해왔다.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조직에 참여하여 파리평화회의에 송금하였고, 임시정부에 2,000원의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또, 재만동포선언서 2,400매를 인쇄하여 해외와 국내에 배포하는 일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 해 4월말에는 대한독립의군부 비밀지령을 받고 상해에 출장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이동녕(李東寧) 등과 길림(吉林)·상해의 사정을 토의하였으며, 조소앙(趙素昻) 등과 임시정부 주비(籌備) 헌법초안을 토의하였다.
1919년 4월말 제2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의정원의원(충청도대표)으로 선임되어 입법활동도 겸하였다가 자금조달 및 비밀사명을 띠고 귀국하다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60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