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공작(公綽)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3년(연산군 9)
사망 연도
1566년(명종 21)
본관
온양(溫陽)
주요 관직
대사헌|황해도관찰사|예조좌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공작(公綽). 정오(鄭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이손(鄭二孫)이고, 아버지는 통진현감 정수강(鄭壽綱)이며, 어머니는 진경원(陳敬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37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다시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뽑혔다. 이어 승문원정자·저작·박사·전적을 거쳐, 호조좌랑·예조좌랑을 지냈다. 잠시 충청도도사로 나갔다가 공조정랑·집의가 되었다.

곧 직강이 되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사섬시·장악원·내자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546년(명종 1) 사인을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간이 되었다가 대호군으로 옮겼다.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부응교를 지냈다.

1551년 직제학에서 통정대부로 승진되어 부제학을 거쳐 1554년 대사간에 이르고 그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대사헌이 된 뒤 이어 한성부윤·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신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삼사(三司)를 두루 거쳐 오랫동안 경연(經筵)에서 학문과 제왕의 길을 강론, 왕의 총애를 받았다.

참고문헌

『예종실록(睿宗室錄)』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서애집(西厓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청선고(淸選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