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공작(公綽). 정오(鄭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이손(鄭二孫)이고, 아버지는 통진현감 정수강(鄭壽綱)이며, 어머니는 진경원(陳敬源)의 딸이다.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37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다시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뽑혔다. 이어 승문원정자·저작·박사·전적을 거쳐, 호조좌랑·예조좌랑을 지냈다. 잠시 충청도도사로 나갔다가 공조정랑·집의가 되었다.
곧 직강이 되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사섬시·장악원·내자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546년(명종 1) 사인을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간이 되었다가 대호군으로 옮겼다.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부응교를 지냈다.
1551년 직제학에서 통정대부로 승진되어 부제학을 거쳐 1554년 대사간에 이르고 그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대사헌이 된 뒤 이어 한성부윤·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신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삼사(三司)를 두루 거쳐 오랫동안 경연(經筵)에서 학문과 제왕의 길을 강론, 왕의 총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