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구계(癯溪)·동촌(東村). 정지겸(鄭之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환(鄭晥)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정뇌경(鄭雷卿)이며, 어머니는 윤상형(尹商衡)의 딸이다.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 승지로 있을 때, 환관(宦官)이 인사(人事)와 상벌(賞罰) 등에 간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왕에게 간언하다가 파직되었으나, 영의정 허적(許積)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도청(都廳)을 지냈다.
그 뒤 좌승지·공조참판·도승지를 역임하다가, 1680년 남인 일파가 대거 실각하게 된 경신대출척으로 가장 먼 변경에 안치되었다. 1685년 죄가 풀려 귀향하게 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으로 경기도관찰사에 등용,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진도(珍島)에 안치되었다가 1697년 귀향하게 되었고, 1699년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