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945∼949. 이름은 왕요(王堯). 자는 천의(天義). 태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충주 호족 유긍달(劉兢達)의 딸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이다. 비(妃)는 문공왕후 박씨(文恭王后 朴氏)와 문성왕후 박씨(文成王后 朴氏)이다.
혜종의 뒤를 이어 945년에 즉위하여 서경의 진장(鎭將) 왕식렴(王式廉)의 도움으로 왕규(王規)·박술희(朴述熙) 등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이러한 사실은 혜종 사후에 전개된 일련의 호족들의 발호를 제압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개경의 호족들은 여전히 반발하여 왕권이 확고한 지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도참설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서경 천도를 서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개경의 호족과 백성들의 불만을 고조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던 것으로, 결국 이 계획은 좌절되고, 왕권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불교를 깊이 믿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