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열지(悅之). 정희(鄭熙)의 아들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 중시에 합격하였다.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냈다.
세종 초의 과학사업에 중요한 소임을 맡아 정인지(鄭麟趾)·정흠지(鄭欽之)와 함께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연구,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편찬하고, 간의대(簡儀臺)를 제작, 설치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그밖에도 왕명에 의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회례문무악장(會禮文武樂章)』·『삼강행실도』 등을 편찬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