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충혼탑이나 위령탑과 같다. 기원은 명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무명용사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고, 국가에 특수한 공을 세운 자에게도 정충사 또는 정충단을 지어 제사지내도록 하였는데, 왕진(王振)에게 내린 것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이항복(李恒福) 등 호성공신(扈聖功臣) 86인과 이순신(李舜臣) 등 선무공신(宣武功臣) 18인을 녹훈한 뒤 전몰장병에 대한 정려(旌閭)ㆍ복호(復戶)ㆍ녹용(錄用) 등의 은전을 내렸다.
특히, 정유재란 때 진주성 함락으로 순국한 장정들을 위하여 진주교외에 단을 쌓아 치제하였는데, 이 단의 이름을 정충단이라 하였다.
그 뒤 주민들의 건의로 창렬사(彰烈祠)를 지어 김천일(金千鎰)ㆍ최경회(崔慶會) 등 4인을 제향하고, 임진왜란의 주갑(周甲)인 1652년(효종 3)에 충민사(忠愍祠)를 지어 김시민(金時敏)ㆍ양산숙(梁山璹) 등 25인을 제향하였다.
그 뒤 관리가 소홀하여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는 진주의 향사(鄕史)인 『진주읍지』에도 누락되는 형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