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겸(士兼), 호는 팔송(八松). 아버지는 유학 정준(鄭浚)이다. 정온(鄭蘊)·조경(趙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3년(인조 11) 생원이 되고, 164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참봉·봉상시직장을 거쳐, 1650년(효종 1) 전적이 되어 서학교수(西學敎授)를 겸임하였다. 이어 사헌부감찰·예조좌랑을 지내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문성후(文誠後)와 함께 팔송정(八松亭)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써 팔송선생(八松先生)이라 불리었다. 1657년 예조좌랑으로 다시 등용되었고, 현종 때는 여러 관직을 거쳐 단양군수·사예를 지냈다. 숙종 때에는 직강·봉상시부정·사예를 여러 차례 제수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하다가, 1691년에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팔송집(八松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