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응순(應順). 할아버지는 예조참판 조방언(趙邦彦)이며, 아버지는 부사맹(副司猛) 조관(趙琯)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당쟁이 심한 것을 보고 대과의 응시를 포기하고 낙향하여 학문에 전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황해도 제읍(諸邑)이 왜군의 수중에 들어갔는데도 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이 없자 분연히 일어나 그가 살고 있는 연안성을 지킬 것을 결심하고, 무인 송덕윤(宋德潤)과 모의하여 연안과 근읍에서 수백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전체 의병을 지휘할 인물이 없자 평산에 머물고 있던 전 이조참의 이정암(李廷馣)을 대장에 추대하고, 그 막하(幕下)에 들어가 연안대첩(延安大捷)을 거두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그 공으로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이 되었다.
난이 끝난 뒤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연안의 현충사(顯忠祠)에 제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