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복형(復亨), 호는 손암(損庵). 조의도(趙毅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일(趙鎰)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조봉원(趙逢源)이며, 어머니는 정시혁(鄭時赫)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50년(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62년(현종 3) 여러 유생들을 대표하여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상소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 뒤 제릉참봉(齊陵參奉)이 되었으나, 1664년 능의 수림(樹林)이 남벌된 책임으로 한때 투옥되었다.
16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70년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의 간택에 들었으나 병으로 입참(入參)하지 못하게 된 책임으로 면직되었다가 곧 복직하여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교리 등을 거쳐, 1674년 강서현령(江西縣令)이 되었다.
1676년(숙종 2) 사은 겸 진주변무사(謝恩兼陳奏辨誣使) 허적(許積)과 함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8년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이듬해 남인 허목(許穆)과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송시열의 2차에 걸친 예론(禮論)에 장사(杖死)한 송상민(宋尙敏)의 옥사에 연루되어 경흥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왔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손암집』 8권이 있다. 부제학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