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친척으로 1393년(태조 2)에 형조의랑이 되고, 그 뒤 순군(巡軍)을 거쳐 1398년 첨절제사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1402년(태종 2)에 신덕왕후와 왕세자 방석(芳碩)의 원수를 갚고, 태조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구실로 태종에게 반기를 들었다.
조정에서는 박순(朴淳)·송류(宋琉) 등을 파견하여 이들을 무마하려 하였으나, 이들을 죽이고, 평안도의 덕천·안주 방면을 거쳐 한양으로 내려오던 도중 이천우(李天佑)의 유기(遊騎) 100여 명을 사로잡고 파죽지세로 내려오다가 고맹주(古孟州)에서 이천우의 군을 격파하였다.
이에 당황한 조정에서는 각 고을의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의 진로를 저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회유책을 써서 반란군을 분산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사기를 잃은 부하들이 이산하자 그는 안변으로 후퇴하다가 아들 조홍(趙洪)과 함께 관군에게 체포,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