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조선유림전국총연합회라고도 한다. 1920년 7월 전국유림 50여 명이 서울 천도교중앙총부에 모여 조직하였다.
이들은 강령을 통하여 전국유림의 전통보전과 서원의 재건을 논의하였으며, 일본과 손잡아야 유학을 재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전국적인 조직을 서둘렀다.
전국 13도지부를 두고 일본인을 고문으로 성균관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으나, 최고위원제에서 대표위원으로 선임된 김만수(金萬洙, 일명 차명수)가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였다고 성토되자 1925년경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