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기독교 청년회관에서 김상용(金尙鎔)·김선기(金善琪)·김성수(金性洙)·김억(金億)·김윤경(金允經)·박승원(朴勝源)·방종현(方鍾鉉)·서항석(徐恒錫)·손경수(孫景壽)·양주동(梁柱東)·이극로(李克魯)·이숭녕(李崇寧)·이하윤(李河潤)·이헌구(李軒求)·이희승(李熙昇)·정인섭(鄭寅燮)·조용만(趙容萬)·최현배(崔鉉培)·함대훈(咸大勳)·홍기문(洪起文) 등 20여명의 발기로 창립되었다.
사무소는 조선어학회 안에 두었고, 최초의 간사는 김상용·이하윤·정인섭 등 세 사람이었다. 그 뒤 정인섭이 책임자가 되어 줄곧 일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8·15광복 후에는 학회의 명칭을 한국음성학회로 바꾸었으며, 1980년대 초 정인섭이 죽을 때까지 회장직을 맡아 학회를 이끌어오다가 그 뒤 자연 쇠퇴하였다.
창립동기를 언어연구의 한 분과적 학술단체로 보았으나, 정인섭은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의 구체적인 바탕을 마련하고 1935년 7월 영국 런던대학에서 열린 제2차국제음성학대회에 우리 나라를 대표하여 참가하려면 학회의 배경이 있어야 유리하므로 서둘러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창립 이후 수시로 연구회나 강연회를 개최하여 자체의 교양에 힘썼다.
최초의 강연회는 1935년 9월 28일 조선어학회에서 열렸는데, ‘언어심리와 외국어 학습’이라는 제목으로 이화여자전문대학의 김상용이 발표를 하였고 손경수는 ‘희랍어음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회원은 조선어학회에서 주관하는 외래어표기법통일안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제2차국제음성학대회에서 발표할 『조선어음의 국제음성부호 표기법』이라는 B5배판의 영문 소책자를 정인섭·이극로·이희승의 공저로 펴낸 바 있다. 그 뒤 1935년 12월 5일 제489회 한글기념일에 ‘오케―교육 레코드’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음성교육 레코드를 만들어서 보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학회에서 정기적인 학술지를 발간하였다는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