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충청도 괴산 출생으로 1889년에 상경하여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념에 영어 · 불어 · 일어 등의 외국어 공부에 전념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성외국어학교 학감을 역임하는 등 외국어 교육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면서부터 활동의 영역을 바꾸어 불교진흥운동과 종교 · 민속을 비롯한 한국 문화 연구에 매진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그중 하나가 여성사 분야이며, 그 결과물이 1927년에 발행된 『조선여속고』(6월)와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10월)이다. 이능화는 1922년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이 때문에 친일파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섭렵하여 저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남서림(翰南書林)과 동양서원이 공동으로 1927년 10월에 발행하였다. 그러나 병인 유하(榴夏) 상한(上澣), 즉 1926년 5월 상순에 서문을 썼다고 하는데, 서문은 보통 원고가 완성된 후 작성하는 것인 바, 『조선해어화사』의 완성은 1926년 5월 이전이며, 출판은 그로부터 약 1년 후에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본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실로 묶은 선장본(線裝本) 형식이며, 크기는 A5판, 분량은 서문 1장, 목록이 4장, 본문 144장(쪽수로는 288쪽)이다. 속표지의 제자(題字)는 당시 대표적 서예가인 위창(韋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글씨이다.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이다. 왕인유(王仁裕, 880~956)의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의하면 원래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가리켜 사용한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의미가 확대되어 기생을 뜻하게 되었다. 즉, 『조선해어화사』는 한국 기생사인 것이다.
『조선해어화사』는 서문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저술의 목적이 사회상의 일부를 밝히는 데 있다고 했다. 본문은 전체 35장이며, 각 장은 대체로 해당 장의 개요를 설명한 다음 관련 자료를 제시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제시된 자료에는 각종 문헌 사료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이 견문한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또 인물 사진을 비롯한 도판 13매를 수록하여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
본문에서는 기생의 등장에서부터 기생 설치의 목적, 기생과 여러 계층의 관계, 재능이나 인품을 갖춘 명기 열전, 기생의 지방적 특징, 기생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고려시대 양수척에서 기원했다는 성호 이익 등과는 달리 한국에서 기생은 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했으며, 관기(官妓)도 고려시대의 경우 확인된다고 했다.
조선시대 사료를 통해 확인되는 기생 설치의 목적은 궁중이나 공적 연회에 필요한 음악 연주[女樂] · 사신 접대 · 변방 군인의 위로 · 의녀(醫女) 자원의 확보 등이라 했다. 기생은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관리 · 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과 관련을 맺으면서 여러 사연을 낳았다고 했다. 또 기생 가운데는 시가에 뛰어나거나 의리를 지키고 효도를 다한 명기들을 소개했고, 기생에도 등급이 있음과 근대에 오면서 기생 조합[券番]이 등장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기생 자신이 지은 시뿐만 아니라 기생에게 준 향염시(香奩詩)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기생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해어화사』는 인용한 사료는 물론 본문까지 모두 현토(懸吐)를 한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료를 충실히 제시하여 사실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적 입장에서는 사료를 분석하여 사실을 도출하는 이러한 서술 방식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천시되고 소외된 계층인 기생을 연구 주제로 부각시킴으로써 한국여성사는 물론 한국사회사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점이다. 둘째, 기생 관련 자료가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해어화사』는 자료집으로 의미가 있다. 셋째, 문헌 사료뿐만 아니라 이능화 자신이 견문한 바를 수록한 부분은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1차 사료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