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회여(晦汝), 호는 송천(松泉). 우의정 조연(趙涓)의 후손이며, 조현(趙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익남(趙翼男)이고, 아버지는 조구(趙緱)이며, 어머니는 이현(李灦)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조경(趙絅)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문예에 뛰어났고 필법이 절묘하였다.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되었다가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홍문관응교를 지냈다.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성균관직강이 되어 현종의 시책(諡冊)을 썼으며, 이어 동부승지·우부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1676년(숙종 2) 태조의 부례(祔禮)를 행할 때 옥책(玉冊)을 써 그 공로로 가자되었다. 그 뒤 대사간·도승지·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명문장가로서 예론에 밝았으며 명필이었다.
유필(遺筆)로 허목(許穆)이 찬한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의 비문과 양주의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목서흠(睦敍欽)의 비문, 대군사부(大君師傅) 권적(權蹟)의 표(表), 포천의 조익남(趙翼男) 비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