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우(子雨), 호는 녹문(鹿門). 조현(趙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익남(趙翼男)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조경(趙絅)이며, 어머니는 김찬(金贊)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을 거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지냈다. 1660년(현종 1) 공조좌랑으로 있으면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이 되었다. 1667년 정언에 이어 사서·수찬·헌납·사간·보덕 등을 역임하였다.
1673년 교리로 있을 때 영릉(英陵)의 관리가 부실함을 지적하여 능의 봉심관(奉審官)들을 탄핵, 파면시켰으며, 이어 검토관으로 경연(經筵)에 나아가 기민의 구제와 부패한 이도(吏道)의 확립을 건의하였다.
청빈하였으며 항상 정의를 주장하였으므로 권신(權臣)의 뜻에 거슬려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문학으로 소일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