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李成桂) 일파에 의해 공양왕이 즉위하자 다음 해인 1390년에 명나라에서 파평군 윤이(尹彛)와 중랑장 이초(李初)가 명나라 황제에게 공양왕은 종실이 아니라 이성계의 인친(姻親)이며, 공양왕과 이성계가 장차 군사를 일으켜 명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무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고려에 알려지게 되자 대간(臺諫)들은 무고에 연루된 사람들을 국문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윤이·이초의 개인적인 책동으로 결론지어짐으로써 사건이 종결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무고에 연루되었던 김종연(金宗衍)이 도망해 무고에 실제로 관계했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어, 이를 계기로 사건이 확대되었다.
이 해 11월에 선공판관(繕工判官) 조유(趙裕)는 김종연과 함께 이성계를 해치고자 모의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시중 심덕부(沈德符)에 의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 조유가 실제로 김종연과 더불어 이성계를 제거하려 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윤이·이초 사건에 연루된 김종연과 친밀한 사이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이성계세력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