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의용군 소대장, 조선혁명군 중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2년(고종 29)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황해도 평산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의용군 소대장, 조선혁명군 중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황해도 평산 출신. 1920년 2월 만주로 망명한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정의부(正義府)에서 활동하였다. 정의부에서는 군사교육을 받았는데 이후 정의부 의용군 제4중대장 부관에 임명되었다.

1924년 정의부 의용군(義勇軍) 제2중대 대표 자격으로서 73여 명과 공동명의로 남·북만주의 전 독립군 세력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치 아래 모이자는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26년 11월 길림성 반석현(磐石縣)에서 개최된 정의부(正義府) 중앙총회에서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조선혁명군이 조직되었을 때 중대장, 제2사장, 제3로 사령관 등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조선혁명군 양세봉, 참모 김학규, 중대장 최운구, 정봉길 등과 함께 3개 중대를 이끌고 중국 의용군 왕동헌(王彤軒), 양석복(梁錫福) 등과 연합작전을 펴 신빈(新賓)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하였다.

1933년 7월 7일 조선혁명군이 영릉가(永陵街) 석인구(石人溝)에서 일본과 교전할 때 불리한 형세에 처하였는데 조화선은 중대 부대를 이끌고 지원에 나서 일본군 40여 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퇴각한 일본군은 다시 1개 대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반격해 왔지만, 이 때 조화선은 대원을 이끌고 최윤용 부대와 연합하여 다시 격퇴시켰다. 이후에도 조화선은 많은 전투를 치렀고, 1938년 2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전투 중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9)
『한국민족운동사료: 중국편』(국회도서관, 1976)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1969)
『한국독립운동사』제4권(국사편찬위원회, 1968)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956)
「조선혁명군연구」(장세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4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0)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1934)
집필자
유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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