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에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래 부산 · 인천 · 원산 등의 개항으로 일본 상인들이 대거 진출하게 되어 1878년부터는 일본인계 은행이 진출하여 지점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인측에서도 근대적인 금융기관을 창설하여 한인상공업자를 보호, 육성하려는 기운이 일어, 1894년 이래 조선은행(朝鮮銀行) · 한흥은행(漢興銀行) · 제국은행(帝國銀行) 등이 설립되었으나, 개점 후 1년도 못 되어 폐점되고 말았으며, 1897년 2월 19일 창설을 본 한성은행(漢城銀行)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여 뒷날 설립되는 대한천일은행(1899년), 제일은행(1906년)과 함께 민족계 은행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한성은행은 1938년 해동은행(海東銀行)을 매수하고 1941년에는 경상합동은행(慶尙合同銀行)을 흡수, 합병하였다. 한편, 한일은행(韓一銀行)은 1931년에 호서은행(湖西銀行)을 흡수, 합병하여 명칭을 동일은행(東一銀行)으로 개칭하였고, 1943년 호남은행(湖南銀行)을 흡수, 합병하였다. 1942년 10월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을 다시 합병하여 조흥은행을 설립하였다.
1983년 3월 정부소유 당행 주식매각으로 당행 민영화하였고, 5월 상호 부금업무취급을 개시하였으며, 1984년 2월 신탁업무취급을 개시하였다. 1984년 2월 당행전액출자회사인 조원 상호신용금고를 개업하였고 1987년 7월 주식병합하였다. 1989년 11월 조흥리스를 개업하였고, 1990년 9월 조흥시스템을 개업하였다.
1991년 7월 한성투금이 조흥증권으로 업종전환후 영업을 개시하였고, 1992년 2월 장기발전계획수립을 위한 경영진단실시(주관 한국금융연구원)하였다. 1992년 11월조흥투자자문㈜인수하였고, 1993년 2월 조흥이념 선포(기업이념, 경영이념, 행훈)하였다. 1994년 9월 조흥경제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95년 7월 ‘조흥 100주년 기념관’ 매입 계약을 체결하였다.
1995년 7월 철도승차권 자동발매를 실시하였고, 10월조흥파이낸스㈜를 설립하였으며, 1995년 11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은행 최고(最古)법인기업’기록 인정서를 수령하였다. 2006년 4월 신한은행에 합병되어 ㈜신한은행으로 다시 출범하였다.
1996년 말 당시 주요 사업은 은행법에 의한 은행업무, 외국환업무, 신탁업법에 의한 신탁업무, 기타 부수 또는 관련되는 업무 등이었다. 관계회사로는 조흥증권㈜ · 조흥리스금융㈜ · 조흥리스금융유한공사 · ㈜조흥상호신용금고 · 조흥시스템 등이 있었다. 총자산은 37조 4093억 원, 자본금 9304억 원, 예수금 18조 5945억 원, 총대출금 18조 4161억 원, 영업수익 2조 5552억 원이었다. 종업원은 관리사무직 9,238명, 등을 합쳐 9,238명이었다. 본점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