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계보인 보첩을 관장하던 관서는 고려 목종 때 전중성(殿中省)으로부터 비롯되어 그 명칭의 변개가 심하였다.
조선시대의 종부시는 1392년(태조 1) 태조의 관제신정 때 전중시(殿中寺)로 출발하여, 1401년(태종 1)에 종부시로 개칭되었다. 그 뒤 한때는 재내제군부(在內諸君府)에 속하였다가, 1428년(세종 10)에 재내제군부가 종친부(宗親府)로 개칭되면서 다시 독립하였다.
종부시는 종친간의 친목을 꾀하고 비위를 규찰하며, 10년에 한 번씩『선원록』을 수찬하고 3년마다 종실보첩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 밖에 왕자·왕녀의 혼가(婚嫁) 때에는 이를 갖춰 준비하는 일도 주관하였다.
관원으로는 조선 초에는 판사 2인, 경 2인, 소경(少卿) 2인, 승(丞) 1인, 직장(直長) 2인을 두었다가 1439년에는 도제조 2인, 제조 2인, 주부 1인, 겸주부 1인이 더 설치되었으며, 1460년(세조 6)에는 판관과 겸주부가 혁파되고 판사는 정(正), 소윤은 첨정으로 개칭되었다.
이리하여『경국대전』에는 도제조 2인, 제조 2인, 정 1인, 첨정 1인, 주부 1인, 직장 1인으로 되어 있다. 도제조는 뒤에 대군과 왕자군에서만 임명되었으며, 아전으로는 서리(書吏) 10인과 조례(早隷) 20인이 있었다. 그리고 정·첨정·주부에게는 조례 각 1인을 배속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종친부에 합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