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다. 고려초에 설치된 좌보궐(左補闕)이 예종 때 개칭된 것이다.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를 구성하였으며, 간쟁(諫諍)·봉박(封駁) 등을 직능으로 하는 간관이었다.
뒤에 좌보간(左補諫)으로 개칭되었으나 1298년(충렬왕 24)에 다시 좌사간으로 복구되었으며, 1308년에는 좌헌납(左獻納)으로 고쳐졌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또 다시 좌사간으로 환원되었는데, 이때는 품계가 종5품으로 높아졌다.
이후 1361년 정5품의 좌헌납으로 개칭되었으며, 1369년에 잠시 좌사간으로 복구되기도 하였지만 1372년에 다시 좌헌납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