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책 ()

의소세손애책문죽책 / 묘책
의소세손애책문죽책 / 묘책
법제·행정
제도
왕실에서 책봉, 존호 · 시호 · 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죽간(竹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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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실에서 책봉, 존호 · 시호 · 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죽간(竹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개설

죽책은 책문의 한 종류이다. 책문은 재질에 따라, 옥책(玉冊), 죽책(竹冊), 금책(金冊)의 세 종류가 있는데 원칙적으로 피수책자(被授冊者)가 ‘왕실의 승통(承統) 내 인물’일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피수책자의 신분에 따라 왕비 이상에 대해서는 옥책, 왕세자 이하에 대해서는 죽책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왕의 친척에 대해 책문이 사용되기도 하고, 신분에 따른 옥책, 죽책의 구분도 불명확하였다. 조선에서도 1755년 숙빈시책이나 1776년 인빈김씨시책 등과 같이 왕의 사친에 대한 사용 사례가 보인다. 대한제국기인 1899년 고종이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에게 시호를 올린 죽책 역시 책문제도에서 또 하나의 예외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를 제외하고 대한제국기에는 금책이 그 기능을 대신하면서 죽책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과 양식

죽책은 피수책자가 왕세자 이하이며, 내용에 따라서는 봉책(封冊), 존호책(尊號冊), 시책(諡冊), 애책(哀冊) 등으로 구분된다. 봉책의 책봉문에는 책봉의 배경, 인물의 인적 사항과 평가(칭송), 책봉 선언문, 당부 사항 등이 포함된다. 존호를 올리는 존호책, 시호를 올리는 시책은 호를 올리는 배경, 인물의 인적 사항과 평가, 올리는 호에 대한 설명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초상 때 제작되는 애책은 사자(死者)를 애도하는 문장이다.

죽책은 죽간에 글을 새겨 1개 첩으로 엮고, 각 첩을 연결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제술(製述)─서사(書寫)─회장(繪粧)으로 이루어졌다. 제술과 서사는 각각 죽책문 제술관과 죽책문 서사관이 담당하였다. 특히 죽책문은 사륙변려문으로 작성되므로 관각체에 능하면서도 품계가 높은 관원이 담당하였는데, 대제학이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은 북칠(北漆)─각자(刻字)─전자(塡字)─작첩(作貼)의 각 과정을 거치는데 모두 전문 공장(工匠)이 담당하였다. 죽책의 규모는 문장의 규모에 따르는데, 1부의 첩수는 2~10첩(짝수첩)이고, 1첩의 간수는 5간 또는 6간이다.

고려의 죽책은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옥책과 마찬가지로 각 간을 끈으로 엮어 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146년(의종 즉위년) 옥책 「고려인종시책」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옥책의 처음과 마지막 첩에 새겨진 인물상이 죽책에도 적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황

조선시대 책문은 종묘에서 엄중히 관리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거의 전실되고, 이후에 제작된 책문도 이괄의 난을 거치면서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죽책은 옥책에 비해 제작 사례가 많지 않으며, 현존하는 책문 306건 가운데 죽책은 41건에 불과하다.

시대별로는 조선시대 40건, 대한제국기 1건이 있고, 내용별로는 봉책 23건, 존호책 7건, 시책 11건이 있다. 소장처별로는 국립고궁박물관에 39건, 고려대학교박물관에 2건이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죽책을 포함한 책문은 내용이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권력층의 정치적 상황과 수수자의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평가와 칭송 위주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저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책문의 가치는 책문의 제작 배경, 수수자의 신분 관계, 왕실 의례의 특수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평가하여야 한다.

책문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한 왕조가 예와 효라는 유교 덕목을 실천하면서 행한 왕실 의례의 산물이며, 동시에 왕실 최고 계층의 신분이나 명예를 직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책문은 형태적으로 당대의 문장가와 명필, 최고 수준의 전문 장인이 협업으로 제작한 화려한 왕실 공예품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책문의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 또한 중요한 국가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책문의 복합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사료적 가치는 물론 오랜 역사를 지닌 중요 유교 문화 유산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책문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장서각 소장 책문 탁인본의 현황과 특징」(장을연, 『장서각』 22, 2009)
「조선시대 왕세자 책봉 죽책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 후기 왕실의 옥공예장인 연구」(장경희, 『미술사연구』 15, 2001)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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