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의 토사를 파올리는 기계를 준설기(浚渫機)라고 하고, 준설기를 장치한 배를 준설선(浚渫船) 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량의 교각(橋脚) 기초 굴착도 수중의 토사를 파올리는 것은 준설과 같지만 이때는 수중굴착(水中堀鑿)이라 하고, 수면 위의 토사를 파는 것은 일반적으로 ‘굴삭(堀削)’이라고 한다.
소형 선박으로 화물을 운반할 때는 준설의 필요성이 적었으나,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수심이 얕은 항구에는 선박 접안이 어려워 외항에 정박하고 소형 선박으로 화물을 운반할 경우에는 하역비 과다, 하역기간 장기화 등 어려움이 있어 항구의 수심 증가를 위하여 준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선박이 항구에 입출항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항만과 항로 준설을 주로 하였으나 차츰 발전하여 운하준설, 해저광물채취, 수중구조물 기초공사, 연약지반치환(軟弱地盤置換), 준설토사로 화물야적장 임해공단 부지조성, 농지조성, 방조제축조 등 넓게 활용되고 있고, 선체를 적고 가볍게 제작·분해·조립을 할 수 있게 하여, 내륙(內陸)의 저수지·강·하천도 준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준설방식은 토질에 따라 일반준설·쇄암준설·발파준설로 대별될 수 있다. 일반준설은 진흙·모래·자갈 준설하며, 쇄암준설은 쇄암을 중추식(重錘式)이나 충격식(衝擊式) 공법으로 부순 뒤 준설, 발파준설은 암반을 폭약으로 발파 후 준설하는 방식이다.
준설을 구역에 따라 항만준설과 내륙준설(內陸浚渫)로 나누기도 하며 항만준설은 항만·항로(航路)·해면매립 등 해안준설을 말하고, 내륙준설은 저수지와 강·하천 등의 준설을 말한다.
준설선의 종류에는 그래브식(grab type)·디퍼식(dipper type)·버킷식(bucket type)·석션식(suction type) 등이 있다. 그라브식·디퍼식·버킷식은 대체로 준설토를 토운선(土運船)에 실어 운반하고, 석션식은 토사가 물과 혼합되어 배송관을 통해 사토장(捨土場)으로 송토(送土)한다.
준설선에 자체 추진장치가 있는 경우 자항식(自航式), 추진장치가 없으면 비항식(非航式)이라 하며, 선체에 준설토를 담는 호퍼(hopper)가 있는 준설선도 있다.
준설선의 발전사를 보면, 그래브식은 1617년 창안하여 프리스트만사에서 현재 구조로 건조하였다. 디퍼선은 1750년 고안되어 1796년 실용적 구조로 건조하였다. 버킷선은 1591년에 고안하여 1632년 상용화되었다. 1802년 강력한 기계력에 의한 준설선으로 건조하였다.
석션선은 1867년에 고안하여 1900년에 더욱 개량되어 스에즈운하개발에 이용되었다. 동양에는 1900년경 일본이 준설선을 제작 준설을 하게 되었다.
초기 준설능력은 약 10∼100㎥/hr 정도 였으나, 현재는 약 100∼2.000㎥/hr로 능력이 향상되어 공사기간 단축, 경제적 준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준설계획 수립에는 준설량·토질·공사기간·준설심도·사토거리·기상 등을 고려하여 적정 장비를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경제적 준설에 매우 중요하다.
고려시대 992년(성종 11)부터 세곡(稅穀)수송을 위하여 해변이나 강변에 조창(漕倉)을 세우고, 조운선(漕運船)이 운항하였다. 초기 항구는 연안항(沿岸港)·하구항(河口港)·하항(河港) 등 천연항이었고, 배 입출항이 곤란할 때나 간조(干潮) 때 또는 갈수기에 수시 인력준설이 행해졌다.
예로부터 생필품·공물(貢物) 등 화물 운반은 해로(海路)로는 해선(海船)에 약 1,000∼2,000석 적재운항 하였고, 수로(水路)로는 강선(江船)에 소금 약 200∼300가마를 적재하고 운항하였다. 강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완만하여 한강은 단양·영춘, 낙동강은 안동, 금강은 신탄진 등 내륙 깊숙히 배가 왕래하던 운하의 나라였다.
조선시대 1398년(태조 7)경 마포에서 도성까지 생필품을 인력 우마차 운반에 어려움이 많아 욱천(청파동)을 장정 1만 명을 동원 준설하여 남대문 근처까지 배를 들어오게 하려 했으나 한성쌓기에 백성의 과다한 부역으로 보류되었다.
1411년(태종 11) 개거도감(開渠都監)을 설치, 도성 수해방지를 위하여 장정 5만 명을 동원 청개천과 지천 준설과 하천변 석축쌓기를 하였다.
1760년(영조 36) 준천사(濬川司)를 설치 홍수범람을 막기 위하여 장정 21만 5000명을 동원 청개천준설을 대대적으로 하였다. 1970년경 한강하류 손돌목에서 조운선 전복이 자주 발생하여, 굴포천에서 인천 백석포 간 뱃길(운하) 변경계획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열강의 문호개방 요구로 부산(1876년)·원산(1880년)·인천(1883년)을 시작으로 목포·남포·마산·군산항 등이 개항되었다. 1910∼1945년까지 왜인들이 경제적 착취 군사목적으로 항구를 증축, 개축하면서 항만·항로 준설이 행해졌다.
광복 이후 미군이 진주하여 군사물자 수송을 위하여 부산·인천항을 중심으로 준설이 행해졌다. 1960년경부터 항구 증축을 위하여 울산·포항·묵호항 등이 준설이 행해졌고 1967년에는 대한준설공사가 설립되어 항만과 항로 준설을 주로 했고, 1968년 농어촌진흥공사가 조립식 준설선 6척을 도입하여 저수지·하천 준설을 하였다.
1982∼1986년까지 한강개발을 하면서 한강준설(일부 구간 약 36㎞)을 하였다.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이고, 수출입 물동량 증가, 동남아 물류기지 추진 등 항만 확대, 군소항구의 증축 등으로 항만준설이 요구되며, 내륙의 강과 하천은 산림파괴(1950년경 민둥산)로 호우 때 산과 들에서 흘러 내린 많은 토사로 강과 하류까지 토사가 퇴적되어 강바닥이 드러나고 하천은 건천화되고 있어 갈수기는 물부족과 수질악화, 홍수 때에는 수위상승으로 수해피해가 증가되고 있다.
하류에서 상류로 강을 준설하면 수심이 깊어져 강물확대, 자정능력 증가로 수질개선, 홍수 때 수위 강하로 수해피해 감소, 선박 왕래로 수운의 활성화, 어족 증가를 비롯한 생태계 회생 등의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