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년(광종 11)에 광종은 중국과 대등한 입장을 취하여 황제로 칭하고 개성을 황도(皇都), 서경을 서도(西都)라 칭하는 한편, 연호를 세워 준풍이라 하여 주체성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일찍이 이마니시(今西龍)는 이를 송나라 태조의 연호 건륭(建隆)에 대한 피휘식(避諱式) 용법, 즉 준풍의 준은 건(太祖 諱)을 피하고 풍은 융(世祖 諱)을 피한 것이라 하여, 준풍은 실상 고려의 독자적인 연호가 아니라고 부정하였으나 오늘날 우리 학자들에 의하여 다시 수정되었다. 이 준풍의 연호는 963년까지 사용되다가 송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고 송나라의 연호 건덕(乾德)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