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와 더불어 평장사의 관직을 구성하였다. 정원은 1인이다.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는 고려의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이 당제(唐制)에 따라 중서령(中書令)·중서시랑평장사·중서사인(中書舍人)·중서주서(中書注書) 등 중서성(中書省) 관직과 문하시중(門下侍中)·문하시랑평장사·급사중(給事中)·문하녹사(門下錄事) 등 문하성(門下省) 관직의 이원적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문하평장사에 대비되어 설치되었던 관직이다.
그러나 중서문하성을 단일 관부로 보는 것이 통설이므로 문하평장사와 병렬관계가 아닌 상하관계에 있었고, 서열상 그 아래에 위치하였다고 여겨진다. 항상 충원된 것은 아니고,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또는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라 하여 시랑평장사가 겸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밖에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나 중서시랑평장사의 약칭으로 사용된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진다.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영향으로 고려의 관제가 격하될 때 문하평장사와 합쳐져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개칭되었다.
그 뒤 1356년(공민왕 5)에 반원운동(反元運動)의 일환으로 문종관제가 복구되면서 다시 두어졌지만, 1362년에 첨의찬성사로 되돌아갔다가 1369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되었다.
최근 학계에서는 고려의 3성 6부제(三省六部制)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고려의 3성 6부는 당(唐)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여 운영한 것이 아니라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친 중서문하성이라는 단일기구와 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되어 실제로는 2성 6부제로 운영되었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이에 따르면 중서평장사는 중서문하성의 정2품 관직이 된다. 이에 대해 고려의 3성이 당제와 마찬가지로 중서성·문하성·상서성으로 이루어져 3성 6부제로 운영되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중서평장사는 중서성의 정2품 관직이 되어 시각의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