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황해도 수안군, 서쪽은 용강군·강서군, 남쪽은 황해도 황주군, 북쪽은 강동군·대동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31′∼126°15′, 북위 38°41′∼39°12″에 위치하며, 면적 909㎢, 인구 9만 5150명(1938년 당시)이다. 11개 면 203개 이(里)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중화면 낙민리이다.
동부는 산지가 분포하고 서부는 평야지대를 이룬다. 동부산지는 언진산맥의 여맥이 뻗어내려 증봉산(甑峰山, 879m)·일출봉(日出峰, 450m), 중앙에는 청량산(靑凉山, 188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일부 지역에는 카르스트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서부평야지대는 낙랑 준평원의 일부로 황주평야와 이어져 있다.
문포천(文浦川)은 동부산지를 북류하여 하천 유역에 평야를 발달시키며 대동강으로 유입한다. 대동강과 그 지류인 곤양강(昆陽江)은 서부평야지대 위를 흐르며, 하천 유역에 비옥한 토지가 발달되어 주요 농경지대와 거주지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수질이 좋지 않아 풍토병에 걸리기 쉬운 결점이 있다. 기후는 대륙성기후로 한서의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0.3℃, 1월평균기온 -9.3℃, 8월평균기온 26.1℃, 연강수량 944㎜이다.
[고 대]
이 지방은 일찍이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그 뒤 한때 방치되었다가 고구려 세력이 남하하면서 비로소 현(縣)이 설치되었다. 고구려시대에 지금의 중화는 가화갑(加火押), 상원은 식달현(息達縣)이라 불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주(漢州)에 속하였는데 헌덕왕 때 가화갑은 당악현(唐嶽縣), 식달현은 토산현(土山縣)으로 개칭되었다.
[고 려]
고려 초기에 당악현은 서경(西京)의 속촌으로 바뀌어 당악촌(唐嶽村)으로 불렸다. 1018년(현종 9) 토산현은 황주(黃州)에 영속되었다. 1136년(인종 14) 묘청(妙淸)의 난 이후 서경기(西京畿) 4도를 나누어 강서(江西)·강동(江東)·순화(順和)·삼등(三登)·삼화(三和)·중화(中和) 등 여섯 곳이 현으로 격하될 때, 황곡(荒谷)·당악(唐嶽)·송곶(松串) 등 9개 마을을 합하여 중화현을 삼고 현령을 두어 서경에 영속시켰다.
1322년(충숙왕 9)중화현이 태조 때의 공신 김락(金樂)·김철(金哲) 형제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 토산현도 공신 조인규(趙仁規)의 할머니의 고향이라 하여 상원군(祥原郡)으로 승격되었다. 1371년(공민왕 20) 중화군의 현령이 지군사로 승격되었다.
[조 선]
1413년(태종 13) 이 군은 평안도에 편속되어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진관제가 실시될 때 평양진관 소속으로 편성되었고 수령은 군수로 개편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3세기 중엽 이 군의 호구는 1,503호 2,710명이었고, 상원군은 703호 1,899명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군 출신 의병장 임중량(林仲樑)이 양덕조(楊德祚)의 휘하에서 공이 컸다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근 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평양부 상원군·중화군으로 개편되었고 다음해 13도제가 실시되면서 평안남도에 편속되었다. 1914년 4월상원군은 중화군에 통합되어 중화군 상원면으로 개편되었다. 즉 종래의 읍내면과 홍암면이 상원면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이때 하도면과 상도면이 중화면에 통합되었고 양무대면·신제면·동정면이 양정면으로, 석호면과 영진면이 해압면으로, 마정면과 당촌면이 당전면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상원면 흑우리검은모루산 남쪽 기슭에서 발굴된 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인 상원유적은 이미 구석기시대에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유적이다. 본래 석회암동굴이었으나 도로공사로 파괴된 이 유적은 5개의 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종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동물의 화석이 발굴되었는데, 대략 40만∼50만년 전의 유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동두면 진파리와 설매리의 고분군은 많은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이다. 간동면 지석리의 고인돌은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규모가 큰데,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지맥(地脈)을 압승하기 위하여 놓여졌다고 한다. 동두면 진파리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능이라고 전하는 고분이 있으나, 이는 고구려 세력 남하 후에 생겨난 것으로 보이며 동명왕릉(東明王陵)으로 믿기 어렵다. 중화면 청학리청량산에는 길상사, 수산면 성재리심곡산에는 심곡사(深谷寺)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육기관인 향교가 중심이 되어 소수의 지방자제들을 교육시켰으며, 지방 여러 곳에는 서당이 설치되어 한문교육이 실시되었다. 한말 개화기 이후 근대문명의 지방 파급에 따라 근대교육을 실시하는 개량서당도 생겨났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2년 중화공립소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고, 1921년 이후에 경의(敬義)·당정(唐井)·신흥(新興)·수양(修養)·양무(楊武)·용산(龍山)·용흥(龍興)·대성(大成)·상운(祥雲) 등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송우의숙(松隅義塾)·신성의숙(信聖義塾)·명륜강습소(明倫講習所) 등도 신학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사학기관 탄압으로 거의 폐교되었다. 1945년 당시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1개 교가 있었다.
종교활동은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일찍부터 평양의 기독교 영향을 크게 받아 개신교·천주교 등의 전파가 크게 확산되었다. 특히 천주교에서는 한국천주교회의 지도적 인물인 노기남(盧基南) 주교와 장면(張勉) 등이 배출되었고, 천도교에서는 33인의 한 사람인 임예환(林禮煥) 등이 활약하였다. 1931년 현재 불교사찰 5개, 천도교교당 11개, 천주교성당 2개, 개신교교회 45개가 있다.
서부평야지대의 곤양강 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잘 이루어져 있어 논농사가 발달하였으며, 그 밖의 지역은 거의 밭농사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밀·수수·콩·메밀·고구마·땅콩 등이다. 특히 조는 쌀과 함께 주식이 되고 있으며, 수수는 소주와 중화엿의 원료로 사용된다.
특용작물로는 목화·고추·깨 등을 재배하며 예로부터 재래면을 많이 재배해 왔으나, 1919년 면작개량조합을 조직하여 품종개량·집약재배 등을 실시하여 면화생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고추는 풍토에 적합한 청산종과 남주종을 재배하는데, 맛이 독특하고 크기와 모양이 우수할 뿐 아니라 술을 빚기도 하여 이 지역의 수요에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상원면의 약초·밤, 천곡면의 인삼, 해압면·신흥면의 사과가 유명하다. 사과는 황주사과와 그 맛이 다름이 없고, 밤은 속껍질이 잘 벗겨지고 맛이 꿀맛과 같아 평양밤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잠업은 권농가의 약 10%에 불과하여 소규모 농가에서 행하여진다. 축산업은 비교적 활발하여, 종묘우계를 조직하고 원종우 생산마을을 설정하여 우량우 사육에 힘쓰고 있다. 1926년에는 축산조합에서 종축장을 설치하고 종돈·종계·종양 등을 사육하여 농가소득에 큰 몫을 하였다. 특히, 양돈이 활발하여 양돈두수가 1만 두 이상이다.
도로·철도교통의 요충지이며 평양과의 교통이 편리하여 평양상권에 속하고, 다른 군에 비하여 시장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일용잡화 등은 평양에서 직접 구매하며, 부근의 농산물은 시장을 통하여 평양으로 공급한다.
중화면 낙민리의 읍내장과 상원면 신읍리의 읍내장은 3·8일, 풍동면 대동리의 비석장, 간동면 내동리의 내동장, 신흥면 상삼리의 두동포장은 1·6일, 풍동면 능성리의 능성장, 해압면 요포리의 요포장은 4·9일, 수산면 건천리의 태평장, 간동면 간동장리의 간동장, 당정면 당곡리의 당곡장은 5·10일, 양정면 석양리의 곤양장은 2·7일에 개시된다.
특히 거래가 활발한 중화 읍내장과 요포장은 대동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용강·강서지역과 거래가 이루어지며, 대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남포·송림지역과의 교역도 활발하다. 곤양장은 곤양강 수운을 이용하여 대동군의 곡창지대와 상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상원 읍내장과 간동장은 동부산간지역 상업기능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장시의 주요 거래품목은 각종 농산물과 면화·밤·누에고치·약초·사과 등의 특산물 및 일용잡화 등이다. 또한 양돈·양계·우량우사육이 활발하여 가축시장이 열리는데, 중화면 초현리의 중화장, 상원면 신읍리의 상원장은 3·8일, 풍동면 능성리의 능성장은 4·9일, 간동면 간동장리의 간동장은 5·10일, 양정면 석양리의 곤양장은 2·7일에 각각 열린다. 특히 중화·능성·간동·상원 가축시장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경의가도(京義街道)와 경의선이 병행하여 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중화면을 기점으로 상원·수안 방면과 간동·요포·석양 방면의 도로가 개통되고, 그 밖에 각 면지역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완비되었으며, 경의선은 평양 및 황해도지역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또한 대동강 수운은 요포를 중심으로 진남포·평양과의 물자교류에 이용되며, 곤양강 수운은 석양리를 중심으로 대동강 유역의 곡창지대와 농산물거래에 이용된다. 주요 관광지로는 동두면 진파리에 동명왕릉과 풍동면 가수리에 가사굴 등이 있다.
[간동면 看東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7,320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상하리이다. 본래 간동면으로, 1929년 읍면병폐합에 따라 배화면(培和面)을 병합하였다. 명구리에 대덕산(大德山, 319m)이 솟아 있고, 중리와 내동리 앞을 묵치천(墨峙川)이 흐르고 있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陸稻栽培)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맥류·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광산으로는 오리리에 수은광산이 있다. 교통은 이 면을 중심으로 산업도로가 황해도 황주와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상하(上下)·간동장(看東場)·지석(支石)·조치(棗峙)·광제원(廣濟院)·사기(沙器)·수재(秀才)·간지정(干支井)·유(柳)·노년(老年)·명구(名區)·내동(內洞)·중(中)·오리(梧梨)·부원(府院)·일연(日淵) 등 16개 이가 있다.
[당정면 唐井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9,860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당곡리이다. 본래 마정면(馬井面)과 당촌면(唐村面)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당정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두면의 무동산(舞童山, 240m)과 간동면의 대덕산에서 발원한 곤양강은 중화면과 이 면을 관류하여 양정면의 북변 대동강으로 유입한다.
농업은 1926년에 준공된 동화수리조합의 몽리면적에 수구리·석교리·동산리지역이 속하게 되고, 검암리·적선리·양라리지역은 조수에 의하여 대동강이 곤양강으로 역류하는 물을 이용하여 한재(旱災)가 없는 전천후농업이 이루어짐에 따라,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쌀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보리·밀·수수·녹두·옥수수 등이다.
교통은 중화면을 중심으로 도로가 이 면과 양정면에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당곡(唐谷)·후장교(後長橋)·송오(松塢)·양라(陽羅)·검암(儉巖)·간(間)·두정(斗井)·적선(積善)·애간(艾間)·당촌(唐村)·석교(石橋)·수구(水龜)·동산(東山)·건산교(乾山橋)·화문(和文) 등 15개 이가 있다.
[동두면 東頭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인구 7,467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협계리이다. 1929년 읍면병폐합에 따라 생양면(生陽面)을 폐하고 이 면에 속하여 있던 서옥리·대류리·서가리·다기장리·조양리 등 5개 동리를 병합하였다. 대류리에 무동산이 솟아 있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수수·맥류·녹두·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중화역을 중심으로 2등도로가 이 면을 통과하여 상원·수산면을 지나 황해도 수안과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진파리에 동명왕릉과 고분군, 설매리에 고분군이 있다. 특히 동명왕릉은 동명성왕이 기린마를 타고 승천한 뒤 남긴 채찍을 매장하였다 하여 진주묘라고도 한다. 장룡리에는 용산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협계(峽溪)·흑(黑)·신봉(新鳳)·채송(蔡松)·진파(眞坡)·고정(古井)·설매(雪梅)·대선(大仙)·죽월(竹月)·용산(龍山)·장룡(張龍)·무진장(戊辰場)·대류(大柳)·서옥(書玉)·조양(朝陽)·다기장(多奇障)·서가(書加) 등 17개 이가 있다.
[상원면 祥原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8,879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신읍리이다. 본래 상원군의 읍내면(邑內面)과 홍암면(紅巖面)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원군을 폐하여 이 군에 이속하고 상원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29년 읍면병폐합에 따라 하도면을 병합하였다.
문산리에 일출봉이 솟아 있고, 상원천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여 풍동면을 지나 남강으로 유입한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맥류·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중화면에서 분기한 2등도로가 동두면과 이 면을 통과하여 수산면을 지나 황해도 수안과 연결되고, 이 면에서 풍동면을 지나 평양과도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읍(新邑)·덕령(德嶺)·장항(獐項)·내입암(內立巖)·외입암(外立巖)·상귀동(上貴洞)·중귀동(中貴洞)·초귀동(初貴洞)·구거비(求去非)·흑우(黑隅)·화봉(樺峰)·직현(直峴)·법화(法樺)·성산(城山)·장전(長田)·대정(大井)·문산(文山)·흥천(興天)·금충(金忠) 등 19개 이가 있다.
[수산면 水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4,651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노전리이다. 병운리에 대청산(大靑山, 873m)·수산(水山, 734m), 건천리에 고령산(高靈山, 543m) 등이 솟아 있고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맥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상원면에서 분기한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 황해도 수안과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성재리에 심곡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노전(蘆田)·병운(竝雲)·용천(龍泉)·동구(洞口)·화전(花田)·은구(銀口)·다목(多木)·건천(乾川)·성재(成才) 등 9개 이가 있다.
[신흥면 新興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7,021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상삼리이다. 본래 의산면(義山面)·용산면(龍山面)·칭천면(秤泉面) 등 3개 면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흥면으로 개칭하였다.
농업은 서부평야지대로 토양이 비옥하지만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건파도작법(乾播稻作法)을 도입하였는데, 습한 저지대의 흙을 깊이 파내고 건모를 심었다가, 우기에 접어들면 빗물을 모아서 모를 키우는 방법으로 그 성과가 매우 좋아 농업개량 및 쌀증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보리·밀·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중화면에서 분기한 2등도로가 면 중앙을 통과하여 해압면을 지나 용강군에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용흥리에 안양사·용흥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상삼(上三)·심방(沈防)·신포(新蒲)·광산(廣山)·윤산(潤山)·삼응(三鷹)·용하(龍下)·진산(眞山)·용흥(龍興)·윤암(尹巖)·운산(雲山)·성천(城川)·백리(百梨)·고산(古山)·심촌(沈村)·대기암(大奇巖)·신한(新寒)·칭우(秤隅)·칭정(秤井)·경목(鏡睦) 등 20개 이가 있다.
[양정면 楊井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9,861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석양리이다. 본래 양무대면(楊武垈面)·신제면(新濟面)·동정면(東井面) 등 3개 면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양정면으로 개칭하였다. 동두면의 무동산에서 발원한 곤양강은 중화·당정면을 관류하여 이 면 북부를 지나 대동강으로 유입한다.
농업은 조수에 의하여 대동강이 곤양강으로 역류하는 물을 이용하여 한재가 없는 전천후농업이 이루어진다. 습한 저지대는 건파도작법을 도입하여 농업개량 및 쌀증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보리·밀·수수·녹두·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중화면을 중심으로 산업도로가 이 면에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석양(石陽)·신허(新許)·한교(寒橋)·용해(龍海)·신대(新大)·양지(陽地)·고잔(古棧)·성현(城峴)·신리(新梨)·삼합(三合)·대내(大內)·석정(石井)·간성(澗星)·입석(立石)·음양(陰陽)·문정(文井)·당정(唐井)·정암(亭巖) 등 18개 이가 있다.
[중화면 中和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인구 1만 4198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낙민리이다. 본래 상도면(上道面)과 하도면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이를 병합하여 중화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29년 읍면병폐합에 따라 생양면을 폐하고, 어부산리·빙장리·사룡리·충의리·묵성리·장원리 등 5개 이를 병합하였다.
월은산(月隱山, 293m)·청량산·무동산이 솟아 있고 곤양강이 면의 북부를 동서로 관류하여 당정·양정면을 지나 대동강으로 유입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보리·밀·수수·녹두·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경의선과 경의가도가 이 면을 통과하며, 중화역을 중심으로 2등도로가 동쪽으로는 동두·상원·수산면을 지나 황해도 수안과, 서쪽으로는 신흥·해압면을 지나 용강과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청학리청량산에 길상사가 있다. 또한 추당리에 있는 주천정(朱泉亭)은 청일전쟁 때 정보탐지차 출동하였던 일본군 장교 7명이 귀대 도중 습격을 받아 몰살한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곳이며, 진율리의 냉천(冷泉)은 피부병이나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 하여 봄·여름철이 되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낙민(樂民)·신우(新牛)·초현(草峴)·갈매(葛梅)·치산(峙山)·진율(眞栗)·당밀(唐密)·금수정(金水井)·석박(石礡)·운봉(雲峰)·관(館)·강로(江老)·산개(山開)·장산(長山)·독산(獨山)·정척(正陟)·회유(回楡)·하명월(下明月)·신유(新楡)·추당(楸唐)·청학(靑鶴)·어부산(魚鳧山)·빙장(氷莊)·사룡(寺龍)·충의(忠義)·묵성(墨成)·장원(長院) 등 27개 이가 있다.
[천곡면 天谷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6,073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용곡리이다. 증봉산·오봉산(五峰山, 782m)과 국사봉(國士峰, 664m) 등이 솟아 있고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간동면에서 발원한 묵치천은 이 면을 관류하여 상원·풍동면을 지나 남강으로 유입한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맥류·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상원면을 중심으로 산업도로가 이 면을 지나 황해도 수안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간동면을 거쳐 황해도 서흥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용곡(龍谷)·개금(開金)·대흥(大興)·휴암(鵂巖)·번동(繁洞)·화암(禾巖)·이암(鯉巖)·덕현(德峴)·전산(錢山)·초봉(初峰)·이봉(二峰)·각금(覺今)·귀일(貴逸)·토교(土橋) 등 14개 이가 있다.
[풍동면 楓洞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9,559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능성리이다. 본래 풍동면으로 1929년 읍면병폐합에 따라 상도면을 병합하였다. 지동리에 제령산(帝靈山, 340m)이 솟아 있고, 묵치천이 이 면을 관류하여 남강으로 유입한다. 농업은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수답과 육도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녹두·수수·맥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상원면에서 분기한 2등도로가 이 면을 지나 평양과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고령리의 고령산에 수락사(水落寺)가 있고, 가수리에는 석회동굴인 가사굴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또 능성리에 낙암정(落巖亭)·신선정(神仙亭), 노동리에 금강정(金剛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능성(綾盛)·덕암(德巖)·고령(高靈)·복정(福井)·노동(蘆洞)·풍정(楓井)·영천(靈泉)·가암(加巖)·남양(南陽)·구읍(舊邑)·내동(內洞)·지동(智洞)·대동(大同)·고암(古巖)·덕동(德洞)·이현(泥峴)·용강(龍江)·가수(佳殊)·벽하(碧霞) 등 19개 이가 있다.
[해압면 海鴨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1만 1880명(1938년 당시). 면소재지는 요포리이다. 본래 석호면(石好面)과 영진면(永津面)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이를 병합하여 해압면으로 개칭하였다. 광석리에 해압산(海鴨山, 332m), 목제리에 정이산(鼎耳山, 194m) 등이 솟아 있다. 특히 해압산은 이 군의 서부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삼각형을 이루어 동북쪽으로는 길쭉하게 모가 나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약간씩 모가 나 있다.
농업은 서부평야지대로 토양이 비옥하지만 수리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습한 저지대는 건파도작법을 도입하여 농업개량 및 쌀증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조·콩·팥·보리·밀·수수·녹두·옥수수·고구마 등이다. 교통은 중화면에서 분기한 2등도로가 신흥면을 지나 이 면 중심을 통과하여 용강군에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해압산을 중심으로 고봉사(高峰寺)·종덕사(鍾德寺)와 냉천·약수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요포(瑤浦)·흥문(興文)·용산(龍山)·영삼(永三)·하석담(下石潭)·상신흥(上新興)·하신흥(下新興)·인암(印巖)·황촌(黃村)·애곡(崖谷)·안현(鞍峴)·광석(廣石)·광성(廣城)·성하련(城下蓮)·신안포(新安浦)·죽산(竹山)·유양(柳陽)·화호(花虎)·간곡(間谷)·동천(東川)·포류(浦柳)·신갈(新葛)·이안(二安)·황산(黃山)·삼성(三姓)·목제(睦濟)·매현(梅峴)·동곡(東谷)·삼가(三街) 등 29개 이가 있다.
평양특별시 남부에 있는 군. 동쪽은 상원군, 서쪽은 강남군, 남쪽은 황해북도 황주군, 북쪽은 평양시의 역포구역·낙랑구역·사동구역과 접하고 있다. 인구는 10만 2870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중화면의 24개 이, 동두면·율리면·용연면의 전체 이와 간동면의 1개 이로 이루어졌으며, 1963년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평양시에 속하였다. 1967년에는 강남군에서 동산·건산·진광·백운 등 4개 이가 중화군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중화읍을 비롯하여 관봉(館峰)·삼성(三姓)·금산(金山)·장산(長山)·채송(蔡松)·마장(馬場)·용산(龍山)·어룡(魚龍)·명월(明月)·삼흥(三興)·충룡(忠龍)·건산(乾山)·물동·백운(白雲)·진광(眞廣)·동산(東山) 등 16개 이가 있다. 군 소재지는 중화읍이다.
이 군은 평양언덕벌 남부에 위치하여 동부지역에 높지 않은 산들이 솟아 있으나 서부지역은 언덕과 평야로 되어 있다. 동부에 있는 마창산(340m)·영추산(347m)과 중화읍 북쪽에 있는 청룡산(195m)이 높은 산들이다.
큰 하천은 군의 가운데서 북서쪽으로 흘러 대동강에 합치는 곤양강이다. 북동부에서는 무진천의 상류가 흐르며, 이밖에도 곤양강에 흘러드는 10여 개의 하천들이 있다. 곤양강 상류에 건설된 명월저수지와 무진천 상류에 건설된 마장저수지를 비롯한 4개의 저수지가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은 9.6℃, 1월 평균기온은 -8.6℃, 8월 평균기온은 24.4℃이며, 연평균강수량은 940㎜이다. 첫서리는 10월 26일경, 마감서리는 4월 14일경에 내린다. 산림은 군 전체면적의 50%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이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경작지는 군 전체 넓이의 37%이다. 그 중 논이 25%, 밭이 64%, 과수원이 10.7%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강냉이·팥·녹두·완두·수수 등이 산출된다. 또한, 평양특별시 교외의 농업지대로서 채소와 과일이 생산되고, 국영 축산과 협동농장 공동 축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축산업 부문은 소·돼지·닭을 주로 사육하고 있다.
공업은 기계공업을 비롯하여 건재·식료·일용품·방직 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주요 공업제품으로는 전동기·방직설비부속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망으로는 평부선 철도와 평양∼개성 간, 평양∼중화 간 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