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필사 시기는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제1·2책에 시 623수, 제3∼5책에 교서(敎書) 3편, 전문(箋文) 3편, 지발(識跋) 4편, 설(說) 1편, 문(文) 1편, 제문 25편, 소서(疏書) 65편, 체의(髢議) 1편, 제6∼8책에 묘비문·신도비명·비명 각 1편, 묘갈명 2편, 음기(陰記) 2편, 묘표 2편, 묘지명 15편, 시장(諡狀) 1편, 행장 3편, 서연일기(書筵日記) 1편, 연행일기(燕行日記) 2편, 동유록(東遊錄)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서는 사직에 관한 것이 많고, 사은(謝恩)에 관한 내용도 더러 있다. 「사부교리 겸 진강변사소(辭副校理兼陳江邊事疏)」에서는 부교리를 사직하면서 아울러 국가 정책에 관한 긴급 건의 사항으로 강변 6읍을 철저히 방비해야 함을 진언하였다.
이 소에서 강변 6읍은 강 하나만 건너면 적지이고, 한 번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지형이 험고(險固)해 되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지적, 먼저 주민의 부역(賦役)과 세금을 경감해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도록 한 뒤,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길러 방비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서연일기」에는 경연에서 군신간에 있었던 대화와, 경기와 호서의 암행 어사가 되어 순찰한 뒤 왕에게 복명해 처리한 일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연행일기」는 1857년(철종 8) 7월 25일부터 12월 11일까지의 일기로, 저자가 세자책봉주청정사(世子冊封奏請正使) 서명균(徐命均)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면서 연로에서 보고 듣고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경(燕京)에 도착 후 일어난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청나라에 바친 조공의 물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상과 청나라와의 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이 밖에도 금강산을 구경하고 쓴 「동유록」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노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