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지형학은 지구의 기복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세계적인 대산맥이나 대양분지와 같은 지구의 일차적 기복에 대한 문제도 지형학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구조지질학이나 지구물리학에서 다룬다.
지형학은 현대적인 과학으로 확립된 이후 주로 지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현대의 지형학에서 연구대상으로 삼는 지형은 거의 육지의 지형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규모가 작은 것이 보통이다. 지형학이 소규모 지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주변의 지형이 그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산이나 골짜기 또는 평야는 소규모 지형이고, 이러한 지형은 자연환경의 일부로서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형학은 19세기에 지질학의 한 분야로 유럽에서 발달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리학자에 의해 주로 연구되고 있다. 어느 지역의 지역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자연환경의 한 요소로서 지형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지형학은 20세기에 들어와 자연지리학의 핵심 분야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지형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90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이때는 주로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 지질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었고, 주로 지질학을 바탕으로 한반도 지형 전체를 거시적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산맥의 방향ㆍ지구대(地溝帶)ㆍ지각변동 등이 주요 연구대상이었다. 이러한 연구 추세는 19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900년대 초에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지체구조와 지질구조가 주로 연구되었고, 1930∼1940년대에는 침식면의 발달사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고토 분지로는 신학문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지질과 지형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의 지질을 조사한 일본인 지질학자들은 대개 고토 분지로의 제자들로서 고토 분지로의 산맥 체계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을 뿐 큰 틀은 계승되었다. 태백ㆍ소백ㆍ낭림ㆍ마천령ㆍ적유령ㆍ멸악ㆍ마식령ㆍ차령ㆍ노령 등의 산맥 이름도 고토 분지로가 처음 사용하였다.
1950년대 이후 선진 외국에서는 데이비스(William Morris Davis)의 침식윤회설(侵蝕輪廻說)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형의 계량적 연구 등 큰 변혁이 일어나면서 지형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에 따른 혼란 등으로 1960년대 초까지 지형 연구의 침체가 계속되었다. 그 동안 많은 국내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벌어진 선진 외국과의 격차는 지금까지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지형학의 발달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두 사람은 박노식(朴魯植)과 김상호(金相昊)이다. 박노식은 1958년경희대학교 지리학과를 창설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지형학 논문을 쓴 학자이다. 한편 김상호는 1954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와 사회대학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연구업적과 함께 숱한 후학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의 지형학 연구는 1959년박노식의 논문 「한국 선상지 연구」를 시초로 1960년대 초부터 본격화되었다. 1961년김상호의 「한국 중부지방의 지형 발달」은 박노식의 퇴적지형 계열의 논문에 이어 최초로 발표된 침식지형에 관한 연구이다.
퇴적지형과 침식지형으로 대별되는 지형학 연구는 이 두 학자의 연구로 시작되었고, 이후 이들이 한국 지형학에 끼친 영향과 공로는 절대적이었다. 1960년대 지형학의 주제는 주로 침식면으로 지형 발달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구조지형ㆍ하천지형ㆍ해안지형ㆍ카르스트(karst) 지형 등에 대한 연구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박노식과 김상호 같은 제1세대 학자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김도정(金道貞)ㆍ권혁재(權赫在)ㆍ박동원(朴東源) 등 선진 외국에서 유학한 지형학 전공자들이 속속 귀국해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1960년대의 주요 연구분야에서 더욱 많은 논문들이 나왔고, 김도정의 주빙하(周氷河)지형에 대한 연구, 권혁재와 박동원의 해안지형과 하천지형에 대한 연구 등 과거에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분야의 연구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지형학 연구는 과거에 비해 연구주제가 다양해지고 발표된 논문의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이 시기에는 침식면과 지형발달사ㆍ구조지형ㆍ하천지형ㆍ해안지형ㆍ카르스트 지형은 물론 제4기 연구ㆍ풍화와 미지형(微地形)ㆍ사면 형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지형학 연구에 다양한 연구 방법론이 도입되었다. 이와 함께 지리정보체계(Geographical Information System)가 지형연구에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실시간으로 정밀한 지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위성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더욱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화분(花粉) 및 퇴적물 분석,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등 더욱 새롭고 정교한 분석 기법들이 도입됨에 따라 연구성과에 대한 신뢰가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응용지형학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응용지형학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부터 있었지만 계통적 연구가 미진했던 당시에는 큰 진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최근 들어 지형의 응용적 연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 진행되어 온 계통적 연구의 성과물이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광자원과 자연유산으로서 지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 중요성이 커지게 된 것도 응용지형학 연구가 활성화된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지형학의 주요 연구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암석과 기복의 관계를 연구한다. 지구의 표층인 지각은 각종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암석은 종류에 따라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다르고, 지표의 기복은 암석의 차별적 풍화와 침식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복의 형성에서 암석이 차지하는 몫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며, 이 문제는 근대지형학의 발달 초기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둘째, 기복의 진화를 연구한다. 기복의 진화를 연구할 때는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이른바 ‘침식윤회설’의 내용은 지형이 단계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침식기준면이나 기후와 같은 외적 요인이 변동하면, 진화의 방향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침식기준면의 변동 또는 지반운동과 관련된 단구나 평탄면의 발달과 그 편년(編年) 그리고 과거의 기후가 현재의 지형 발달에 미친 영향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세계의 기후는 제4기에 들어와 극심한 변동을 겪어왔고,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될 때 마다 해수면이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제4기와 관련된 연구에서는 관심의 초점이 현재가 아닌 과거의 상황에 맞추어지고 있다.
셋째, 지형의 발달을 이끌어 가는 각종 기구의 작용을 연구한다. 지형은 풍화작용과 더불어 유수ㆍ파랑ㆍ바람ㆍ빙하 등의 기구에 의해 형성된다. 이러한 기구가 수행하는 작용을 파악하려면, 기구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분야는 접근방법에서 앞의 두 분야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분야는 대개 특정한 지역의 지형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반면, 이 분야는 연구내용이 계통적이고 인접 과학의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하나의 자연현상은 수많은 요인의 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각종 지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이룩된 성과는 지형학을 ‘형태와 형성작용’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일으켜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넷째, 현재의 시점에서 지형 발달에 미치는 기후의 영향을 연구한다. 지형 발달을 이끌어 가는 각종 기구의 작용은 기후에 따라 다르게 펼쳐진다. 습윤지역과 건조지역, 열대지방과 한대지방의 지형은 전반적으로 기후의 차이를 현저하게 반영한다. 기후와 관련된 지형은 주제별로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세계의 주요 기후지역별로 지형의 형성작용과 발달을 체계화해 기후지형학을 확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분야는 세계를 대상으로 지형 발달의 지역적인 차이를 밝히는 것이 중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접근방법이 지리학적이다.
이 밖에도 응용을 비롯한 몇 가지 분야를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분야가 어떻게 나뉘든 간에 지형연구가 지형 자체의 이해에 그친다면, 그러한 연구는 성격상 지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인 것이 되기 쉽다. 지리학에서는 분포를 중시하며, 지형을 환경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지형학이 지리학적인 지형학이 되기 위해서는 지형의 발달과정뿐만 아니라 그 분포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형학은 무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형학을 연구하고 후진들을 양성해 온 여러 선배 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지형학은 항상 지리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지형학의 연구성과는 지리학 이외의 인문ㆍ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학은 그 동안 극복해 온 것보다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가 더 많다. 지난 50여 년간 연구의 수준이 향상되고 연구의 다양화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미흡한 수준에 있거나 관심이 미치지 못한 분야가 많다. 이는 아직 지형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