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등처진변만호부는 제2차 일본원정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281년(충렬왕 7)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 신설되었다. 당시 합포(合浦 :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에 군사 500명이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이 곧 만호부의 병력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287년 합포의 원군이 모두 철수함에 따라 고려군으로 그 병력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 뒤 1293년 이전에 금주등처진변만호부는 합포등처진변만호부로 개칭되었다.
한편, 전라도진변만호부는 1290년에 설치되었으며, 그 치소(治所)는 강진(康津)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합포등처진변만호부와 전라도진변만호부는 왕경등처 순군만호부(王京等處巡軍萬戶府) · 서경등처관수수군만호부(西京等處管水手軍萬戶府) · 탐라군민만호부(耽羅軍民萬戶府) 등과 더불어 원나라간섭기의 5만호부를 구성하였다.
진변만호부의 직제는 다른 만호부와 마찬가지로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도만호(都萬戶) · 상만호(上萬戶) · 만호 · 부만호(副萬戶) · 천호(千戶) · 총관(摠管) · 백호(百戶) · 제공(提空) · 녹사(錄事)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나, 사료에서는 다루가치 · 만호 · 부만호 · 천호 · 총관 · 녹사의 존재만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관직은 모두 고려의 관리로 충당되었으며, 임명절차는 고려 국왕의 보거(保擧)를 거쳐 원나라에서 제수하거나 고려 국왕이 직접 임명하였다. 또한, 이들 진변만호부의 관리는 만호부의 군사를 지휘할 뿐 아니라 지방관으로서의 직능을 함께 수행하였다.
1356년(공민왕 5) 반원정치의 일환으로 5만호부를 모두 혁파함에 따라 진변만호부 역시 폐지되었다. 이후 방왜(防倭)의 기능은 1374년에 설치된 왜인추포만호(倭人追捕萬戶)와, 수군이 재건되면서 1387년(우왕 13)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수군만호부(水軍萬戶府)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