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년(咸亨 3)에 완성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는 당태종(唐太宗)의 명으로 승(僧) 회인(懷仁)이 20여 년 동안 새긴 것으로, 왕희지(王羲之) 글씨의 집자비로는 제일 앞선다.
우리 나라의 집자비로는 성교서에서 집자한 무장사아미타여래조상사적비(鍪藏寺阿彌陀如來造像事蹟碑)가 처음이다. 신라 애장왕 즉위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는 신라 소성왕의 계화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집자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는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흥법사진공대사탑비(興法寺眞空大師塔碑)와 954년(광종 5)에 건립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진공대사탑비의 ‘臣崔光胤奉 敎集 太宗文皇□□□(신최광윤봉 교집 태종문황□□□)’과,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된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1962년 지정)에 당태종이 쓴 온탕(溫湯)·진사(晋祠) 두 비에 관한 기재로 미루어 보아 당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는 김생(金生) 글씨의 집자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생이 왕희지 글씨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왕희지와 당태종의 글씨가 크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