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기구가 아니었으므로 중요한 문헌을 찬집할 때만 설치되고 끝나면 폐지되었다. 처음 설치된 시기는 1513년(중종 8)으로 『연산군일기』를 찬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연산군일기』를 찬집하는 기간에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을 문종의 묘인 현릉(顯陵)에 합장(合葬)하는 일이 있어 편찬이 중단됨과 동시에 혁파되었다.
그 뒤 대행왕(大行王)의 행장이나 시장(諡狀)을 찬집하고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으레 설치되었다. 그러나 국정에 부담이 되는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폐지됨과 동시에 찬집의 업무도 중단되었다.
찬집을 중단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서는 수재(水災)·흉년·한재·내우외환 등인데 당시의 상황과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예외도 있었다. 1516년 실록의 편찬을 위하여 설치되자 대간들이 한재가 너무 심해서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찬집청의 일을 혁파하자고 주장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536년 실록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설치된 일이 있고, 1614년(광해군 6)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선조실록』의 편찬을 위하여 설치되었으며, 1777년(정조 1) 영조의 행장과 시장을 편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그밖에도 역대왕의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개설되었지만 설치기간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일이 마감될 때까지 계속되고, 일이 마무리되면 폐지되므로 실록에 설치와 폐지를 남기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