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7칸(19. 67m), 측면 4칸(9. 56m), 기둥높이 10척. 창경궁을 처음 지은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지었다.
그 뒤 인조 때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겪으면서도 불타지 않고 보존되어오다가 1830년(순조 30)에 일어난 큰 불로 인하여 타버렸다. 이 후 183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보존되어오고 있다.
평면의 구성을 보면, 4면에 너비 1칸인 퇴(退)를 두르고 정면 퇴의 한가운데를 개방하여 대청으로 들어가는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다. 대청은 3×2칸 규모로 건물 내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청 양옆에 각각 1칸짜리 방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민족항일기를 거치면서 변형되었고 이후 원형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지금은 바닥 전체가 마루로 되어 있다.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만큼 온돌방을 옛모습대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구조는 지면과 구분되도록 1단으로 장대석을 두르고, 그 안쪽에 높이 1m인 석축을 쌓되 주춧돌과 세번째 댓돌이 맞물리도록 가지런하게 짜맞추었다. 주춧돌은 평면이 방형인 돌을 댓돌 두께보다 더 높게 만들어 기둥을 받치고 있어서 건물의 무게를 떠받치는 지지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기둥 윗몸에 윗면이 수평인 수서형태의 익공(翼工)을 2개 짜올려 주심도리를 받친 간결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궁궐 침전 건물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형식상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