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권 9책. 목판본. 1728년(영조 4) 아들 모(謩)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재(李栽)의 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7에 시 865수, 부(賦) 2편, 권8∼10에 서(書) 101편, 권11∼13에 잡저 7편, 서(序) 7편, 기(記) 10편, 발(跋) 9편, 잠(箴) 3편, 계(戒) 1편, 명(銘) 4편, 찬(贊) 1편, 상량문 9편, 축문 12편, 제문 21편, 권14∼16에 애사 10편, 묘표 3편, 묘갈명 11편, 묘지명 14편, 행장 6편, 권17·18에 부록으로 묘갈명·묘지명·행장후지(行狀後識) 각 1편, 만사 29수, 뇌사(誄辭) 3편, 제문 14편, 만장 7편, 백록리사봉안문(白麓里社奉安文) 1편, 상향축문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자연을 노래하고 향리 생활에 자족하는 시제(詩題)가 많다. 특히, 밀양·창녕·현풍·함안 등 고향 주변의 경관이나 고적을 읊은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귀전록(歸田錄)」·「기후고(耆後稿)」 등의 시는 원숙한 경지를 보여 준다.
서(書)는 친척과 사우간에 안부를 묻고 학문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상갈암선생(上葛菴先生)」은 스승 이현일(李玄逸)에게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선비들을 육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 용퇴를 종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밖에 이재를 비롯한 영남의 학자들과 학문을 토론한 서신들이 많다.
잡저의 「책문(策問)」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논한 것이다. 잠의 「무경민사잠(無輕民事箴)」은 왕에게 백성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敬啓)한 글이다. 또, 서재의 규범을 적은 「서재간의(書齋簡儀)」와, 향약의 실시를 위해 만든 「사약절목(社約節目)」이 있다. 이현일에 대한 묘지와 유사는 장문으로, 그의 학문과 행적이 상세히 적혀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