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6책. 영인본. 저자가 죽은 뒤 향사(鄕士)와 문인들이 경주의 오산서원에 모여 판각, 간행하기로 하고 초출(抄出), 1차 교정까지 보았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성사시키지 못하고 건연(巾衍)에 쌓여 있던 중, 1975년 족친 종석(鍾石)의 주선으로 성균관에서 방대한 학술 저서인 『술고상제(述古常制)』와 저자의 아버지의 『직양재문집(直養齋文集)』을 함께 엮어 영인, 간행하였다.
맨 앞에 유묵 3편을 실었고, 권두에 성낙서(成樂緖)의 인행기와 안붕언(安朋彦)의 서문, 권말에 종석의 발문이 있다. 원문의 권두에는 이기희(李紀曦)의 서문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부(賦) 3편, 시 183수, 권2∼4에 시 411수, 권5·6에 서(書) 73편, 권7·8에 잡저 25편, 권9에 서(序) 12편, 기(記) 17편, 권10에 발(跋) 8편, 잠(箴) 1편, 명(銘) 3편, 찬(贊) 9편, 송(頌) 2편, 권11에 상량문 2편, 축문 2편, 제문 7편, 뇌문(誄文) 1편, 애사 6편, 묘지명 3편, 권12에 행장 8편, 부록에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총 600수에 달하는데 사실적 묘사가 뛰어나다. 형식은 율시와 절구가 주종을 이루며, 내용은 서경·영물시가 많으며 감회시도 다수 있다. 특히, 「옥산십육영(玉山十六咏)」은 박인로(朴仁老)의 「독락당가(獨樂堂歌)」와 소재 및 내용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또, 옥산과 가까운 거리의 고향 호명동의 산수를 읊은 「호명동 삼십사제영(虎鳴洞三十四題咏)」은 작자가 얼마나 자신의 고장을 깊이 완상했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문(文)은 주자학(朱子學)의 깊은 사상적 바탕 위에서 실학에 기초하고 있다. 글에 꾸밈이 적고 전실(典實)하며, 척사위정을 당면 문제로 다루었다. 잡저의 「문방사우전(文房四友傳)」은 조선 말기 가전문학 연구에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