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주유고 ()

창주선생유고
창주선생유고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익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08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익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0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08년(숙종34) 김익희의 종손 김진규(金鎭圭)가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송근수(宋近洙)와 송진규의 발문이 있다. 발문에 의하면, 저자는 생전에 문집의 남인(濫印)을 개탄한 나머지 자신의 문집을 간행하지 말 것을 유촉한 바 있었으나, 송시열(宋時烈)의 권고로 아들이 편집해 놓은 것을 종손이 간행한 것이라 한다.

서지적 사항

18권 7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은 응제록(應製錄)으로 교서 4편, 치제문 3편, 기우제문 16편, 권2∼7에 시 376수, 권8∼11에 봉사(封事) 2편, 소(疏) 42편, 권12∼14는 차(箚) 12편, 계(啓) 21편, 행장 1편, 권15는 잡저 18편, 권16∼18에 부록으로 세계(世系)·행장·신도비명·묘표·후지(後識) 각 1편, 제문 8편, 만사 9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권8의 「갑신봉사(甲申封事)」는 1644년(인조 22) 병자호란을 겪은 뒤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전야(田野)가 황폐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수습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9개 항목을 제시한 글이다.

첫째 현재(賢才)를 얻어 책임을 맡길 것, 둘째 벼슬에 나가는 길을 청정하게 해 명기(名器)를 소중하게 여길 것, 셋째 장법(藏法)을 엄하게 해 염치를 장려할 것, 넷째 수령을 가려 써서 나라의 근본을 두텁게 할 것, 다섯째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해 백성의 힘을 넉넉하게 할 것, 여섯째 병기(兵器)를 수리해 변방 방비를 튼튼하게 할 것, 일곱째 제사의 법을 삼가해 신과 화합하도록 할 것, 여덟째 공도(公道)를 넓혀 기강을 바로잡을 것, 아홉째 도학(道學)을 높여 풍속을 교화할 것 등으로 되어 있으며, 항목마다 자기의 견해를 첨부하였다.

1654년(효종 5)에 올린 「갑오봉사(甲午封事)」는 먼저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관계를 약술하고, 이어서 사람을 얻어서 위임하는 방도와 직관(職官)·전부(田賦)·병제(兵制)·학규(學規) 등의 문제에 관한 견해를 개진한 글이다. 특히 효종의 인정을 받았던 유명한 봉사라 전해 온다.

소는 대부분 사직에 관한 것이나, 이 가운데 「청속완사사소(請速完史事疏)」는 선왕의 실록 편찬이 지지부진하자 이에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해 속히 완결시킬 것을 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 척화를 주장한 「옥당청불수만서불허서달입국문차(玉堂請不受嫚書不許西達入國門箚)」와 「옥당청물송신사차(玉堂請勿送信使箚)」가 있다.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권오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