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李海朝)가 번안하여 1908년 11월에 회동서관에서 발행한 개화기 번안소설이다. 번안의 직접 대본은 포천소(包天笑)의 중역본 『철세계』(문명서국, 1903)이며, 홍작원주인(紅芍園主人)이 역술한 일역본 『철세계』(집성사, 1887)를 참조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초 원작은 프랑스의 쥘 베른이 쓴 「인도 왕비의 유산」(1879)이다. 포천소의 중역본과 비교해 보면, 이해조의 「철세계」는 축약과 생략이 많고 계몽소설다운 색채가 더욱 분명해졌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좌선’과 ‘인비’는 모두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부호들이다. 좌선은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 퍼져 사는 라전인종(羅甸人種, Latin Race)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인비는 독일·영국 등지에 사는 살손인종(撒遜人種, Saxon Race)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좌선은 장수촌(長壽村)을 건설하고 의학을 발전시켜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 장수촌은 위생학의 실천을 최고 가치로 한다. 예컨대 주택을 지을 때는 새로 발명한 벽돌을 사용하여 공기가 잘 통하고 습기가 머물지 않도록 하며, 2층 이상을 금하여 일광을 가리지 않게 한다는 규제를 적용한다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 위생에 해롭다 하여 집 한 칸에는 반드시 한두 사람씩만 살게 하였고, 심지어는 잠자는 것까지 규제하여 삶의 1/3을 잠을 자도록 규정해 두기도 하였다.
반면 인비는 우생학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연철촌(煉鐵村)을 건설하고 그곳의 주인이 된다. 인비는 19세기 유럽 국가들 간의 치열한 패권 경쟁을 라전인종과 살손인종의 인종 간 대결로 규정하고, 여기서 패배한 라전인종은 점차 쇠하여 완전히 소멸하고 전세계는 살손인종의 세계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인비에게 좌선의 장수촌은 그 자체가 천지의 대법공심을 어기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인비는 첨단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고, 이것을 가지고 좌선의 장수촌을 소멸시킴으로써 유전적으로 우수한 살손인종을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인비가 만들어낸 대포는 거리 측정 잘못으로 포격에 실패하게 되며 스스로 패망하기에 이른다.
「철세계」는 「80일간의 세계일주」·「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 등과 함께 쥘 베른의 과학적 모험소설을 받아들인 개화기 번역문학의 한 사례이다. 소설을 통해 과학기술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저조하기 이를 데 없는 과학사상을 고취하고 과학계몽을 통해 자주자립 사상을 표방하려 하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철세계」의 계몽성은 이런 과학계몽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분야로 확장된다. 첫째 당시 황·백의 인종적 대결의식을 조장하여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려 하였던 일본 제국주의의 기만적 책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민족적 각성을 주문하는 애국계몽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위생학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위생계몽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위생은 근대국가들이 채택하였던 전략적 지식으로 인구 증가와 부국강병에 이를 수 있는 길이었다. 1908년 전후로 조선의 지식사회도 위생 담론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런 담론적 상황에서 「철세계」의 번안·출판이 이루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