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부여, 청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부여, 청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정의
충청남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공주시, 서쪽은 보령시, 남쪽은 부여군, 북쪽은 홍성군·예산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42′∼127°01′, 북위 36°08′∼36°33′에 위치한다. 면적은 479.21㎢이고, 인구는 3만 248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183개 행정리(11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송방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세는 차령산맥의 여맥이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칠갑산(七甲山, 561m)을 중심으로 남동부 정산 방면과 북서부 청양 방면으로 나누어진다.

남동부에는 계봉산(鷄鳳山, 211m)·대박곡산(大朴谷山, 310m)·앵봉산(鶯鳳山, 300m)·만세봉(萬歲峰, 236m) 등 칠갑산의 지맥들이 솟아 있다. 북부에는 법산(法山, 459m)·국사봉(國師峰, 489m), 북서부에는 문박산(文搏山, 338m)·비봉산(飛鳳山, 280m), 서부에는 백월산(白月山, 560m)·구봉산(九峰山 485m) 등이 솟아 있다. 중앙부에는 사양치(斜陽峙)·대치(大峙, 317m) 등이 있다.

금강(錦江)이 군의 남동부를 흐른다. 지천천(之川川)이 중남부를, 잉화천(仍火川)이 동부를 각각 남류해 금강으로 흘러든다. 또한 무한천(無限川)이 군의 서부 경계를 북류하며, 신양천(新陽川)이 북부 중앙을 북류해 예당저수지(禮唐貯水池)로 흘러들고 있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금강 유역에는 장수평(長壽坪)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지천천 유역에는 고리섬들, 무한천 유역에는 가남평야(佳南平野)가 전개되고 있다.

지질은 군의 대부분이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계로 이뤄져 있으며, 결정편암계가 곳곳에 관입되어 있다.

기후는 내륙에 위치해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 11.9℃, 1월 평균기온 -1.3℃, 8월 평균기온 25.5℃이며, 연 강수량은 1,514.0㎜이다.

역사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목면 지곡리·대평리와 운곡면 후덕리에서 지석묘·입석(立石)·석기 등이 발견되어 청동기시대에 원시농경사회가 정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구로국(狗盧國)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이 설치되었고, 지금의 정산면 지역은 열기현(悅己縣) 또는 두릉윤성(豆陵尹城)이라 했다. 지금 청양읍에 있는 우산성(牛山城)은 백제 때 축성된 것으로 성 안에서 신라 토기편과 기와편이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청남면에서 발견된 백제 와요지(瓦窯址)에서는 기와를 구워 왕도인 사비성으로 수송했다고 한다.

삼국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고량부리현을 청정현(靑正縣) 또는 청무현(靑武縣)이라 개칭해 임성군(任城郡: 지금의 大興)의 영현(領縣)으로 했으며, 열기현은 열성현(悅城縣)이라 고쳐 부여군(扶餘郡)의 영현으로 했다.

고려 초에 청정현을 청양현(靑陽縣)으로, 열성현을 정산현(定山縣)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는 청양현을 천안부(天安府)에, 정산현을 공주(公州)에 소속시켜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그 뒤 청양현은 홍주(洪州: 洪城)에 영속되었고, 정산현에는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395년(태조 4) 청양현에도 감무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고치는 규례(規例)에 따라 청양현과 정산현에 모두 현감이 파견되었다. 1668년(현종 9) 청양현을 정산현에 합하고 명칭도 정양현(定陽縣)으로 고쳤다가 1674년에 다시 청양현과 정산현으로 분리하였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이 있다.

1895년(고종 32) 청양현과 정산현을 각각 청양군과 정산군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산군을 청양군에 편입시켰다. 한편, 1905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지방에서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잡혀 순국하였다. 뒤에 유림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913년 목면 송암리에 모덕사(慕德祠)를 세웠고, 1973년에는 군민들이 대치면 대치리에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정산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켜 권흥규(權興圭)·최용안(崔龍安) 등이 일본 헌병의 총탄에 죽음을 당했다. 1966년에 군민들의 뜻을 모아 정산면 서정리에 권흥규의 순열비(殉烈碑)를 세웠다.

1973년 7월 1일 비봉면 학당리와 청수리가 청양면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 청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7년 1월 1일 적곡면(赤谷面)이 장평면으로, 사양면(斜陽面)이 남양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7년 1월 20일 정산면 백곡리 일부가 목면 지곡리에, 같은 해 9월 30일 청양읍 교월리 일부가 읍내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운곡면 후덕리와 목면의 지곡리·대평리에 남방식 지석묘가 있다. 특히 대평리 지석묘는 모두 12기로 석검·석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지곡리에서는 입석도 발견되었다.

청양읍 읍내리의 우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과 정좌리의 청양장성(靑陽長城), 정산면 백곡리의 두릉산성(두릉이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평면 적곡리에 두률성(豆率城)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대치면 장곡리 장곡사(長谷寺)의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1962년 지정)·장곡사 미륵불괘불탱( 국보, 1997년 지정)·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국보, 2022년 지정)·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1963년 지정)·장곡사 상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또한 정산면의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정산 남천리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장평면 적곡리의 청양 도림사지(충청남도 기념물, 1996년 지정)·도림사지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남양면 온암리의 청양 운장암 금동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 청양읍 읍내리의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청양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평면 화산리에 정혜사 중암목불, 목면 본의리의 계봉사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평면 화산리의 정혜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미당리사지 석조불두(美堂里寺址石造佛頭) 등이 대표적이다.

유교문화재로는 운곡면 위라리에 인조 때 무신 박신룡(朴信龍)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유의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전 박신용장군 의대(국가민속문화재, 1980년 지정), 청양읍 교월리에 청양향교 공자상(靑陽鄕校孔子像)이 있다.

모곡리에는 표절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목면 송암리에는 한말의 명유 최익현의 사당인 모덕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표절사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 등 4인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1959년에 재건되었다.

모덕사는 1906년 군내 유림의 발의로 1913년에 공덕사(恭德祠)라는 명칭으로 건립되었는데, 광복 후 사우를 중수하고 고종이 최익현에게 내린 밀지(密旨) 중 ‘모경숙덕(慕卿宿德: 그대의 큰 덕을 사모함)’에서 ‘慕(모)’자와 ‘德(덕)’자를 따서 모덕사로 이름을 바꿨다.

능묘로는 남양면 구룡리에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묘가 있고, 정산면 천장리에 한말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의 고택지, 3·1운동 때 순사한 권흥규의 묘 및 순열비, 화성면 농암리에는 조선 후기에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무덤인 줄묘 등이 있다.

이 밖에 청남면 왕진리에 백제와요지(百濟瓦窯址)가 있다.

남양면 봉암리에 방기옥 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청양읍 벽천리에 벽함정(碧涵亭) 터, 청양읍 장승리에 청양 영모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정산면 천장리에 민종식 고택(閔宗植古宅) 등이 있다.

청남면 중산리에 대금장, 대치면 이화리에 짚가공, 화성면 매산리에 앉은굿, 정산면 백곡리에 두촌사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정산면 송학리에 청양 정산동 화제(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89년 지정), 운곡면 광암리에 청양 구기자주(충청남도 무형문화재, 2000년 지정), 운곡면 후덕리에 청양 춘포짜기(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8년 지정)가 전승되고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청양향교(靑陽鄕校)와 정산향교(定山鄕校)가 있었다. 청양읍 교월리에 있는 청양향교는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851년(철종 2)에 중수되었고, 1874년(고종 11)과 1904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정산면 서정리에 있는 정산향교도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남양면 대봉리에 윤증(尹拯)의 학덕을 추모해 그의 문인들이 건립한 명재서원(明齋書院)이 있었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에 청양공립보통학교가, 1912년에 정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한편 경술국치를 전후해 민족계 사학으로서 이회민(李會敏)이 사립영명학교(私立永明學校)를 설립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15년에 폐교되었다. 그 뒤 점차 1면 1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2개교와 청양대학이 있다.

이 밖에 군립도서관이 있어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965년에 개원한 청양문화원은 칠갑문화제 등의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향토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펴고 있다.

민속

이 고장에는 윷놀이·널뛰기·쥐불놀이·연날리기·달맞이·그네뛰기·씨름·농악 등의 민속놀이가 전해 오고 있다. 쥐불놀이는 정월 첫째 쥐날(上子日)에 소년들이 논과 밭의 두렁을 태우는 놀이로, 병충해와 쥐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갖고 있다.

달맞이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 사람들이 동산에 올라 달이 뜨는 것을 보며 각자의 소망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이때 달빛이 희면 그 해 비가 많고, 붉으면 가물며, 진하면 풍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이 밖에 아이들 놀이로 고누·숨바꼭질·돌치기·돈치기 등이 있다.

산신제·장승제·동화제(洞火祭) 등의 동제가 있다. 산신제는 칠갑산 주변의 정산면 천장리·마치리, 대치면 장곡리·광금리, 장평면 지천리 등지에서 거행된다. 대표적 예로 천장리의 산신제는 매년 입춘이 지난 뒤 길일을 택해 칠갑산 중턱에 있는 산신단에서 제를 지낸다. 제주의 선정이나 금기 등이 엄격한 관례에 따라 지켜진다.

장승제는 대치면 대치리, 정산면 용두리·해남리·송학리·대박리, 장평면 미당리 등지에서 행해진다. 남상과 여상의 장승을 조각하고 동구(洞口)의 도로 양쪽에 각각 세운 뒤 제를 지낸다.

동화제는 청양읍 정좌리, 장평면 적곡리, 남양면 온암리, 정산면 송학리 등지에 전승되는 동제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제로서, 동화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거행된다. 제를 지내는 과정은 집집마다 한 짐씩 날라 온 땔감나무로 동화대(同火臺)라는 커다란 나뭇단을 만들어 세우고 불을 지른 다음 그 불빛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태평, 농사의 풍작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때 타고 난 동화대가 어느 쪽으로 넘어지는가를 보아 어느 마을이 그 해 불길한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1989년 정산면 송학리의 동화제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양씨효자비전설」·「우성산전설」·「백련지전설」 등 인물·지명에 얽힌 설화가 다수 전해온다. 조선 말기 사람인 양씨의 효자비는 정산면 서정리에 있으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중병을 앓게 되자 양씨는 관청에서 환곡 100석을 빌려 약값으로 썼지만 어머니의 병환에는 아무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의 병에는 사람고기를 먹어야 낫는다는 말을 듣고 양씨는 자기의 허벅지살을 베어 어머니께 고아드렸다. 이런 정성으로 어머니의 병환은 나았지만 환곡을 갚지 못한 양씨는 관가에 끌려가 매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매를 때리려고 아랫도리를 벗겨보니 허벅지살이 없어 이를 이상히 여긴 현감이 자초지종을 묻자 양씨가 그 이유를 말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현감은 환곡의 상환을 면제해 주고 효자비를 세워 그의 효행을 기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청양읍내의 우성산(牛城山)과 그 곳에 솟아 있는 바윗돌과 성터에는 많은 지명유래담이 전해 오고 있다. 특히 우성산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워 있는 소의 고삐 쪽에 자리 잡은 마을을 고삐실이라 하며 소의 젖꼭지 쪽에 자리한 마을을 새끼실이라 한다. 또한 예로부터 우성산이 울면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편 정산면 서정리의 백련지(白蓮池)에는 임진왜란 때 정산현감으로 있던 김장생(金長生)이 피난을 갔다 오는 길에 동헌 마당의 연못에 백련을 심었는데, 그 백련은 다른 장소로 옮기면 곧 시들어 죽고 오직 그 자리에서만 자라므로 그 연못을 백련지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담이 전한다.

이 밖에도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내의 넋이 바위가 되었다는 청양읍 학당리의 「임바위전설」이 있고, 「범보다 무서운 곶감」 등의 이야기가 있다.

충청남도에서 산악 지형이 가장 발달한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이 지역의 민요는 비교적 향토적 정감을 잘 반영하는 노래들이 골고루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김매기노래」는 남자들 노래로서 가장 널리 불리는 민요이다. 선후창으로 부르며 초벌매는 노래와 이듬매는 노래로 구분된다.

초벌매는 노래는 곡조가 느리고 유장하다. “일락서산에 해는 지고 월출 동녘에 달이 솟네 에헤 어여루 상사뒤요/산아 산아 백두산아 눈비 맞아 백두드냐 에헤 어여류 상사뒤요/산은 첩첩 천봉인데 물은 점점 은하수라 에헤 어여루 상사뒤요.”

이듬매는 노래는 가락이 빠르고 사설의 운율미도 좀 더 잘 나타난다. “여보소 농부들 말들어보소 얼럴럴 상사뒤요/높은데 갈면은 밭하나 되고 얼럴럴 상사뒤요/낮은데 갈면은 논하나 되네 얼럴럴 상사뒤요.”

보릿단을 자리개질할 때 부르는 타작노래도 중요한 남자노동요로 꼽을 수 있다. “에헤야/에헤야/저건너 갈미봉에 비묻어 들어온다/에야 헤 에헤 헤야헤 오옴 들로 나가세.”이 노래는 선창―후창―선창―제창 형식으로 이뤄지며 후렴이 길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자들 노래로는 「베틀노래」·「물레노래」·「첩(妾)노래」·「시집살이노래」 등 충청남도 일원에서 볼 수 있는 민요들이 널리 구전되고 있다. 「첩노래」는 처첩 사이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섣달이라 그믐날에 편지 한장 오랬더니/무슨 편지 오랬더냐 시앗죽은 편지더라/옳다 그년 잘 죽었다 무슨 병에 죽었더냐/분홍치마 밝힌 년이 상사병에 죽었더라.”

동요로는 비봉면·화성면 등지를 중심으로 아동들이 ‘중방넘기놀이’나 ‘닭과 살가지(살쾡이)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독특하게 전해진다. “어디 군사냐/전라도 군사다/몇천명이냐/수천명이다/무슨갓 썼나/통영갓 썼다/무슨옷 입었나/철갑옷 입었다/무슨신 신었나/쇠신 신었다/무슨문 열렸나/동대문 열렸다/여―기 열어 동대문 열까.”

‘닭과 살가지놀이’를 할 때는 살가지 역을 맡은 아이가 앞소리를 부르고 닭우리 역을 맡은 아이가 뒷소리를 받는다. 중방넘기놀이를 할 때는 중방 넘는 사람이 앞소리를 부르고 넘겨주는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다.

산업·교통

전체 인구의 약 52.6%가 농업에 종사하며, 농가수는 6,819가구이고, 가구당 경지면적은 154a이다. 논농사가 중심을 이루며, 특히 금강 유역의 청남면·장평면 등지에서 활발히 행해진다. 구릉지에서는 잡곡과 잎담배가 많이 재배된다. 특산물로는 운곡면과 비봉면을 중심으로 구기자가 많이 생산되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광업은 중석·규석·활석 등이 생산되나 매우 미약하다. 구봉광산이 금 생산으로 유명했으나 1971년에 폐광되었다. 특히 청양읍 학당리에는 1998년까지 연간 70만여 톤의 유제품을 생산하는 종합유제품공장을 청양군 축협이 건설할 예정이어서 청양은 일대의 낙농가공업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상업활동은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1830년대에는 청양 관내의 장대리장과 두암리장, 정산 관내의 치성리장이 있었는데, 주요 거래품목은 쌀·보리·콩·신탄·담배·모시 등이었다. 대치를 사이에 두고 2·7일에 열리는 서쪽의 청양장과 5·10일에 열리는 동쪽의 정산장 2개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해안 대천상권이 확장되면서 청양장이 쇠퇴하고 있다. 정산장은 공주 상권에 들어 있어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청양장에서는 곡물·채소·농기구·버섯·약초·의료품·일생생활용품 등이 주로 거래된다. 특히 구기자 거래는 전국 최대이며, 고추도 두껍고 맵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각 시장의 상설화 경향이 높아져 가고 있으며, 소매상가가 활기를 띠고 전문화 경향도 나타난다. 이 외에도 3·8일의 미당장, 4·9일의 장평장, 5·10일의 화성장 등의 소규모 5일장이 형성되어 있다.

교통은 대천∼공주 간의 36번 국도가 군의 중앙부를 동서로 통과하고, 서산∼부여 간의 29번 국도가 군의 서부를 지나며, 신양으로 향하는 621번 지방도가 시작되고 있어서 편리하다.

관광

이 군에는 칠갑산도립공원을 중심으로 많은 명승고적이 있어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군내에는 4개의 관광 코스가 있다. 첫째는 청양읍 읍내리의 석조삼존불입상을 중심으로 하는 읍내 코스이다. 둘째는 청양읍 청양향교와 대치면의 장곡사, 정산면의 칠갑산도립공원·서정리구층석탑·백련지를 거쳐 목면의 계봉사와 모덕사에 이르는 길이다. 셋째는 청양읍에서 우성산삼층석탑에 이르는 길이다. 마지막으로는 청양읍에서 운곡면의 표절사·신대저수지(新垈貯水池)에 이르는 길이다.

청양읍에는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있으며, 칠갑산도립공원에 자연심신수련장·자연휴양림·집단시설지구·자연탐방로 등이 설치되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칠갑산도립공원을 중심으로 노래공원 조성, 건강길 설치, 터널화 추진, 등산로 개설, 도림사지 복원, 도림온천 개발, 수상공원 조성, 편의시설 설치, 3대 호수 조성, 순환도로 개설 등의 각종 관광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읍·면
  1. 청양읍(靑陽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36.14㎢, 인구 1만 42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청양군 군청이 있으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사점·백산·교촌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상면(南上面)과 상서면(上西面)을 병합해 다시 읍내면으로, 1917년 청양군의 이름을 따서 청양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비봉면의 학당리·청수리를 편입했으며,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는 남산(南山, 367m), 서쪽에는 천마봉(天馬峰, 422m), 북쪽에는 문박산(文博山, 338m) 등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천천이 여러 지류들을 합치면서 읍의 중앙을 남류하고, 그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지천천 유역의 평야에서 벼농사가 행해진다. 주변 산간지대에서는 구기자를 비롯해 고사리 및 각종 약초가 생산되고 있다.

상업은 버스터미널과 상설시장에 입지해 있는 각종 서비스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상설시장 일대에서 2·7일에 열리는 5일장이 있다. 공주와 보령간 36번 국도, 홍성과 부여간 29번 국도, 군내의 운곡면으로 통하는 621번 지방도 등이 개설되어 있어 군내의 교통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삼층석탑, 백제시대 산성인 우산성이 있으며, 교월리에 청양향교와 관비산토성지(官婢山土城址), 벽천리에 벽함정터가 있다. 또한 정좌리에는 연치산토성지(燕峙山土城址)와 청양장성, 군량리에 천마산토성지(天馬山土城址)가 있다.

읍내리(邑內里)·백천리(栢川里)·교월리(校月里)·벽천리(碧泉里)·적루리(赤樓里)·정좌리(正坐里)·군량리(軍糧里)·장승리(長承里)·송방리(松防里)·학당리(學堂里)·청수리(淸水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남양면(南陽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8.93㎢, 인구 2,8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룡리이다. 본래 청양군 지역으로 청양읍 내 남쪽 아래가 되므로 남하면(南下面)이라 하여 연석·신역·구역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상면의 일부와 홍주군 상전면(上田面)의 26개 리를 병합해 사양치의 이름을 따서 사양면이 되었다가 198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서쪽에 백월산·구봉산 등이 솟아 있으며, 남동부에는 사양치가 있어 산지로 이뤄져 있다. 지천천이 북동부를 흐르며 유역에는 고리섬들 등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는 벼농사가 행해지며, 구릉지에서는 구기자·잎담배·버섯·약초 등이 재배된다. 광업은 구룡리에 구봉광산이 있어 금이 생산되었으나 1971년에 폐광되었다.

청양읍과 부여군 은산면으로 향하는 29번 국도와 부여군 외산면으로 통하는 606번 지방도, 청양읍과 보령군 청라면으로 통하는 610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온암리에 운장암 금동보살좌상, 봉암리에 방기옥 가옥, 대봉리에 명재서원지(明齋書院址), 구룡리에 채제공묘, 금정리에 향현사지, 신왕리에 화정사지 등이 있다.

구룡리(九龍里)·신왕리(新旺里)·백금리(白琴里)·용마리(龍馬里)·대봉리(大鳳里)·흥산리(興山里)·매곡리(梅谷里)·온암리(溫巖里)·온직리(溫直里)·용두리(龍頭里)·금정리(金井里)·봉암리(鳳巖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대치면(大峙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74.42㎢, 인구 2,2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정리이다. 본래 청양군 지역으로 청양읍 내 동쪽이 되므로 동상면(東上面)이라 하여 계정·탄동·하금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하면(東下面)을 병합해 대치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칠갑산·대덕봉(大德峰, 472m)·대치 등 많은 산들이 연이어 있어 면 전체의 약 80%가 산지로 이뤄져 있다. 지천천이 지류인 장곡천(長谷川)을 합치면서 면의 남부를 흐르며, 대치천(大峙川)이 중부를, 추동천(秋洞川)이 북부를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맥류와 구기자·버섯·잎담배·약초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광업은 주정리에 활석광산이 있다. 공주∼청양 간 32번 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이 도로에 장평면으로 향하는 645번 지방도가 연결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곡리의 장곡사 경내에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상 대웅전·하 대웅전·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금동약사여래좌상·철조여래불입상 등이 있으며, 주정리에 비군(碑群)이 있다.

주정리(酒亭里)·탄정리(炭井里)·광금리(廣金里)·구치리(九峙里)·장곡리(長谷里)·개곡리(開谷里)·작천리(鵲川里)·수석리(水石里)·광대리(光大里)·대치리(大峙里)·형산리(衡山里)·오룡리(五龍里)·이화리(梨花里)·시전리(枾田里)·상갑리(上甲里)·농소리(農所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목면(木面)

군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34.39㎢, 인구 1,5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안심리이다. 본래 정산군 지역으로 나무가 무성하므로 목동면(木洞面)이라 하여 오산·가마·점동 등 3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잉면(仍面)의 일부와 공주군 반탄면(半灘面) 진두리(津頭里), 성동면(城東面) 반곡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어 청양군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계봉산, 남쪽에 앵봉산, 북쪽에 미궐산(薇蕨山, 365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200∼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이들 산지 사이를 치성천(致城川)과 본의천(本義川)이 남류해 금강에 유입되면서 유역에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많이 짓는다. 맥류와 잎담배가 많이 재배되며, 구릉지에서는 구기자·버섯·약초 등이 생산된다. 공주시 우성면과 군내의 정산면으로 통하는 36번 국도가 군의 중앙부를 지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평리와 지곡리에 지석묘, 본의리에 계봉사·계봉사 오층석탑, 송암리에 모덕사가 있다. 신흥리에는 칠원윤씨(漆原尹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지곡리(池谷里)·화양리(華陽里)·신흥리(新興里)·안심리(安心里)·송암리(松巖里)·본의리(本義里)·대평리(大平里) 등 7개 리가 있다.

  1. 비봉면(飛鳳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01㎢, 인구 2,2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녹평리이다. 본래 청양군 지역으로 청야읍 내 서쪽이 되므로 서상면(西上面)이라 하여 두음·녹평·상강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하면(西下面)과 화성면 일부, 홍주군(洪州郡) 얼방면(乻方面)과 대흥군 이남면의 일부를 병합해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에 학당리와 청수리가 청양읍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비봉산·문박산·법산 등이 솟아 있어 동부는 200∼3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뤄져 있다. 중앙에는 강촌천(江村川), 서부에는 무한천이 북류하며 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뱀실·용천(龍川)·학당(學堂) 등의 저수지를 중심으로 벼농사가 활발하다.

본래 이 지역의 평야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장평면의 청량(靑良)중석광산과 남양면의 구봉금광산에서 하천을 타고 흘러온 광독(鑛毒)으로 불모지가 되었다가, 광복 후 주민들이 1m 정도의 상하환토작업(上下環土作業)을 벌여 옥토로 만든 곳이다. 구릉지에서는 군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구기자·버섯·약초 등이 재배된다.

청양읍과 예산군 광시면으로 통하는 29번 국도와 홍성군 장곡면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중묵리에 문박사(文博寺)가 있다. 녹평리(綠坪里)·신원리(新院里)·중묵리(中墨里)·사점리(舍店里)·관산리(寬山里)·장재리(長在里)·강정리(江亭里)·양사리(養士里)·용천리(龍川里)·방한리(方閑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운곡면(雲谷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01㎢, 인구 2,3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모곡리이다. 본래 청양군 지역으로 청양읍 내 북쪽이 되므로 북상면(北上面)이라 하여 분동·효제·도곡 등 3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하면(北下面)을 병합해 신대리의 운곡마을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면의 동쪽에 국사봉, 서쪽에 법산·백월산, 남쪽에 문박산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200∼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뤄져 있다. 신양천(新陽川)이 면의 중앙을 북류하며 유역에 약간의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하천 연안의 평야지대와 신대저수지 부근의 경지에서 벼농사가 행해진다. 구릉지에서는 구기자가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다. 군내의 청양읍과 예산군 신양면을 연결하는 621번 지방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이 지방도는 신양면에서 공주∼예산 간 32번 국도와 연결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후덕리에 지석묘, 위라리에는 박신용장군의 위패를 모신 유의각과 전 박신용장군 의대 4점이 있다. 모곡리에는 표절사와 신대리에 운곡사지(雲谷寺址)가 있다. 모곡리(茅谷里)·위라리(位羅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신대리(新垈里)·영양리(永陽里)·미량리(美良里)·광암리(光巖里)·추광리(秋光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장평면(長坪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72㎢, 인구 2,64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추리이다. 본래 정산군 지역으로 도림사가 있는 적골의 이름을 따서 적곡면(赤谷面)이라 하여 미당·계양·율정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관현면(冠峴面)·장촌면(場村面) 일부와 부여군 도성면(道城面)·공동면(公洞面) 일부를 병합해 청양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면의 서부에 정혜산(定慧山, 355m), 남부에 망월산(望月山, 356m), 북부에 칠갑산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100∼300m 내외의 구릉지이다. 중추천이 면의 중앙을 남류하고, 금강(錦江)이 남부를 서류하며 그 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구룡리와 분향리의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벼농사가 행해져 청남면과 더불어 군내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구릉지에서는 보리가 일부 재배되고, 군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구기자·버섯과 각종 약초가 생산된다.

상업은 중추리 일대의 가촌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영세하다. 시장으로는 4·9일에 열리는 5일장이 주기적으로 서비스 기능을 충족시키고 있다. 미당리에서 3·8일에 열리는 5일장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군내의 정산면과 부여군 은산면으로 향하는 645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적곡리에 도림사지 삼층석탑, 화산리에 정혜사가 있다. 중추리(中楸里)·은곡리(隱谷里)·미당리(美堂里)·적곡리(赤谷里)·낙지리(樂只里)·지천리(之川里)·죽림리(竹林里)·화산리(花山里)·구룡리(九龍里)·관현리(冠峴里)·분향리(分香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정산면(定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08㎢, 인구 3,7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서정리이다. 본래 정산군 지역으로 정산읍 내가 되므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여 수촌·산직·교촌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박면(大朴面)·목동면·잉면의 일부를 병합해 정산군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면서 청양군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계봉산, 서쪽에 칠갑산, 북쪽에 명덕봉(明德峰, 320m)·대덕봉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지역이 기복이 심한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잉화천과 치성천이 남류하며 그 유역에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하천 유역의 평지에서는 백곡(白谷)·대박(大朴)·후동(後洞)·천장(天庄) 등 저수지의 관개용수를 이용해 벼농사가 행해진다. 구릉지대에서는 구기자·버섯 및 각종 약초가 생산된다.

상업은 서정리 버스정류소 일대의 가로변에 입지한 각종 서비스기능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나 규모가 크지 못하다. 5·10일에 이 일대에서 열리는 5일장도 청양읍의 상업적 중심성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점차 쇠퇴하고 있다.

군내의 목면∼청양읍 간 36번 국도와 공주시 신풍면과 군내의 장평면으로 통하는 39번 국도가 서정리에서 교차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서정리에 구층석탑·남천리에 삼층석탑, 백곡리에 두릉산성, 천장리에 항일의병장 민종식의 고택지와 권홍규 순열비가 있다.

서정리(西亭里)·역촌리(驛村里)·백곡리(白谷里)·해남리(海南里)·남천리(南泉里)·송학리(松鶴里)·대박리(大朴里)·용두리(龍頭里)·마치리(馬峙里)·천장리(天庄里)·내초리(內草里)·신덕리(新德里)·와촌리(瓦村里)·학암리(鶴巖里)·광생리(光生里)·덕성리(德城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청남면(靑南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11㎢, 인구 2,04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청소리이다. 본래 정산군 지역으로 청소골의 이름을 따서 청소면(靑所面)이라 하여 지곡·내직·외직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촌면(場村面)과 적곡면 일부를 병합해 청장면(靑場面)으로 개칭하고 청양군에 편입되었다. 1942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북동부에 앵봉산이 솟아 있으며, 중앙에 명덕봉(明德峰, 169m)·석봉(石峰)이 있어 동·서·북부는 구릉성 산지로 이뤄져 있다. 이화천(伊火川)이 면의 서부를, 잉화천이 중앙을 남류해 금강에 합류하며, 금강이 경계를 이루며 동류하고 있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벼농사가 행해져 군내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구릉지에서는 구기자·버섯·약초 등이 생산되고, 양잠도 행해지고 있다. 국도와 지방도가 지나지 않고, 청소리·증산리·왕진리·인량리·대흥리 일대를 기타 도로가 지날 뿐이어서 교통은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왕진리에 백제와요지가 있다. 청소리(靑所里)·지곡리(芝谷里)·내직리(內直里)·천내리(泉內里)·동강리(東江里)·중산리(中山里)·왕진리(汪津里)·인량리(仁良里)·대흥리(大興里)·아산리(牙山里)·상장리(上場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화성면(化城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406㎢, 인구 2,35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산정리이다. 본래 홍주군(洪州郡) 지역으로 용곡역에 있는 화성의 이름을 따서 화성면이라 하여 야동·덕명·화창 등 2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흥구향면(興口香面)을 병합해 청양군에 편입되었다.

동부에는 천마봉, 남부에는 백월산이 솟아 있어 면 전체가 300∼400m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지역은 100∼200m의 구릉지로 이뤄져 있다. 무한천이 여러 지류들을 합치면서 면의 중앙을 흐르며, 유역에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무한천 유역과 화암·수정·신정 등의 저수지 주변에서 벼농사가 이뤄지고 있다. 구릉지에서는 잎담배·구기자·버섯·약초 등이 재배되며, 양봉도 활발하다. 상업은 산정리 일대의 가촌을 중심으로 이뤄지나 영세하다. 5·10일에 열리는 5일장이 주기적으로 상업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청양읍과 보령시 청라면으로 통하는 36번 국도와 홍성군 장곡면으로 통하는 619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농암리의 다락골에 줄묘가 있다.

산정리(山亭里)·장계리(長溪里)·화강리(花江里)·농암리(農巖里)·화암리(花巖里)·기덕리(基德里)·수정리(水汀里)·용당리(龍堂里)·신정리(新亭里)·광평리(廣坪里)·매산리(梅山里)·구재리(九在里) 등 12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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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http://www.cheong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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