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명은 위한조(魏漢祚). 자는 중염(仲炎). 갑산 출신. 백우자(百愚子)이혜손(李惠孫)의 문인이며, 남달리 총명하여 스승을 따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비법을 배워 터득하고 천문과 지리 등 통하지 않은 학문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화객(華客)과 양운객(楊雲客)을 만나 함께 이술(異術)을 배워서 험준한 계곡을 달리기를 평지와 같이 하였고, 축지법을 배워 하루에 수천 리를 달렸다고 한다. 동양의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산천을 구경하다가 뒤에 귀국하여 청학동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청학상인이라 불렸다.
1602년(선조 35) 정월 보름날 제자들을 불러서 “나는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새벽에 일어나 뜰을 거닐다가 대란산(大蘭山)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로는 금선자(金蟬子)·채하자(彩霞子)·취굴자(翠窟子)·아예자(鵝蕊子)·계엽자(桂葉子)·화오자(花塢子)·벽락자(碧落子)·편운자(片雲子) 등이 있어 기상천외의 도를 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