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의 높이 143㎝, 너비 92㎝, 두께 21㎝, 귀부의 높이 35㎝.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진주성(晉州城) 전투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충절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정헌대부 이민서(李敏徐)가 지었고, 성균관사 신익상(申翼相)이 비문을 썼으며, 홍문관제학 김만중(金萬重)이 두전[頭篆 : 비석의 비문 위에 새겨넣은 글자]을 썼다.
비는 이수(螭首) · 비신(碑身) · 귀부(龜趺)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비문을 새긴 비신과 비신을 받치는 귀부는 수성암으로 만들었다.
비신의 머리돌인 이수는 화강석으로 쌍룡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놓고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을 조각했다. 그 아래에 꽃무늬[花文]를 조각한 것이 이채롭다. 이 비석은 다른 비석과 달리 이수 부분이 커서 전체적으로 볼 때 윗 부분이 넓고 밑이 좁은 사다리형을 이루었다.
비문에는 순국한 삼장사(三壯士)의 행적과 용맹하게 싸우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한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의병장 양산숙(梁山璹) 등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순국한 충청병사 황진(黃進)과 사천현감 장윤(張潤)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는데, 임진왜란의 전적과 진주성싸움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