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달 ()

목차
체육
인물
해방 이후 조선하키협회, 조선펜싱연맹 등을 창립한 체육인. 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8년
사망 연도
1950년
출생지
경기도 이천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조선하키협회, 조선펜싱연맹 등을 창립한 체육인. 교육자.
내용

1918∼1950. 경기도 이천 출생.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일본체육회 체조학교(현 일본체육대학)를 졸업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체조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특히 철봉에 뛰어나 1938년 전국기계체조대회에서 1위에 입상하였다.

1938년부터 기계체조 보급을 위하여 정인위(鄭寅暐)·이원규(李元圭)·문순복(文順福) 등과 함께 조선일보 강당·YMCA 등에서 여러 차례 시범경기를 하였다. 또한, 1938년부터 경성상과학교에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1939년 일본체육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하였다.

1943년부터 광신상업학교에 재직하였고, 광복과 함께 같은 해 10월 정인위·이원규·문순복·윤우석(尹禹錫) 등과 조선기계체조연맹(현재의 대한체조협회)을 창립하였다. 1946년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학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1947년 6월 장태형(張泰瀅)·백삼출(白三出)·김성수(金成洙) 등과 함께 조선하키협회(현재의 대한하키협회)를, 유근석(柳根碩)·장태형 등과 함께 조선펜싱연맹(현재의 대한펜싱협회)을 창립하였다. 1949년 대한체육회 창립 제30주년 기념 표창장을 받은 바 있다.

한때 서울특별시경찰국 정보과(당시 사찰과)에 촉탁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6·25사변이 일어난 뒤 납치당하여 옥사하였다. 체조뿐만 아니라 하키와 펜싱 분야 등의 체육발전 및 후진양성에 공헌한 체육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체육회사(大韓體育會史)』(대한체육회, 1965)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