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중서령(中書令) 최충(崔冲)의 고손자, 문하시중 최유선(崔惟善)의 증손자, 평장사(平章事) 최사제(崔思齊)의 손자이자 예부상서(禮部尙書) 최약(崔瀹)의 아들이다. 국자좨주(國子祭酒) 권적(權迪)의 딸과 결혼하여 6남 2녀를 두었다.
공부상서 지추밀원사(工部尙書知樞密院事)를 지낸 외할아버지 이자덕(李資德)의 음덕으로 음서(蔭敍) 혜택을 받아 상서호부 영사동정(尙書戶部令史同正)이 되었고, 1140년(인종 18)에는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성주통판(成州通判)을 거쳐 지홍주사 시전중내급사(知洪州事試殿中內給事)에 이르렀다.
1161년(의종 15)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인 1163년(의종 17)에 송림현(松林縣: 지금의 경기도 장단군 일대) 서산(西山)의 기슭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