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경(伯卿), 호는 경호(鏡湖)·조은(釣隱). 할아버지는 좌윤 최원량(崔元亮)이고, 아버지는 최안린(崔安獜)이며, 어머니는 전인구(全仁具)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4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된 뒤 집현전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1433년(세종 15) 경력(經歷)이 되어 평안도도절제사 최윤덕(崔潤德)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야인정벌에 공을 세우고 돌아와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가 되었다.
이어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가 되고, 공조참의와 이조참의를 거쳐 좌승지를 지냈다. 1439년 공조참판으로 계품사(啓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범찰(凡察)·동창(童倉) 등의 야인들이 양민으로 경성지역에 영주할 수 있도록 요청, 이를 관철시켰다.
이 공으로 밭 300결(結)과 노비 30구가 상으로 내려졌으나 노비는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곧 예문관제학이 되고, 그 뒤 여러 차례 사신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와서 외교적인 공을 세웠다.
한편, 왕명으로 『무원록(無寃錄)』을 주석(註釋)하고 율문(律文)을 강해(講解)하는 등 학문정비에 기여하였고, 형옥(刑獄)에 관하여 여러번 왕에게 자문을 하였으며, 뒤에 이조참판이 되었다.
술을 지나치게 즐겼으므로 왕이 친서를 내려 절제할 것을 명하자, 그 글을 벽에 걸어두고 출입할 때에는 꼭 이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강릉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