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수부(秀夫). 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 최한정(崔漢禎)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군수 김계옥(金繼玉)의 딸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76년(선조 9) 무과중시에 장원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1594년에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야인들의 감파보(甘坡堡) 침입을 막지 못한 데 대한 견책을 받았다.
1596년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홍가신(洪可臣)과 함께 주장(主將)이 되어 홍산(鴻山)·임천(林川) 등지에서 난적을 소탕하여 공을 세웠다.
이듬해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칠천량해전에서 원균(元均)과 함께 패사하였다. 1604년 이몽학의 난 평정에 세운 공로로 청난공신(淸難功臣) 2등에 추록되고, 1615년(광해군 7) 찬집청(撰集廳)의 주청으로 임난공신록에도 추록되었다. 시호는 충원(忠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