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수 ()

고전시가
작품
1429년(세종 11) 궁중에서 연향(宴享 :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악장.
정의
1429년(세종 11) 궁중에서 연향(宴享 :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악장.
구성 및 형식

「가성덕(歌聖德)」과 함께 예조에서 지은 작품으로 『세종실록』 권44에 수록되어 있다. 10장으로 된 연장체로서 육언한시 형태로 되어 있으나, 각 연의 끝이 한결같이 경기체가의 독특한 구절을 수용해 “偉 永荷皇恩 景何如(위 영하황은 경하여)”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을 경기체가로 보기도 하고 혹은 한문으로 된 악장 문학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偉∼景何如(위∼경하여)”라는 특유의 구절을 제외하고는 경기체가와는 형식상 성격이 전혀 다르다. 조선 초기 육언한시로 된 악장 문학의 예로서 「정동방곡(靖東方曲)」·「천권동수지곡(天眷東陲之曲)」·「가사십장(歌詞十章)」·「악장종헌(樂章終獻)」 등이 더 있다.

내용

「가성덕」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한 사대적인 측면에서 성수(聖壽)를 축원하는 노래다. 이로써 중국에 대한 사대정책의 일환으로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오면 연향에서 사용된 악장 문학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1장은 우리 조선이 해동(海東)에 있어 은(殷)나라 태사인 기자(箕子)가 주(周)나라로부터 봉함을 받았다는 것, 2장은 기자가 팔조(八條)를 가르침에 어리석은 백성을 교화했다는 것, 3장은 우리 임금(세종)이 조종을 이어 충효를 다했다는 것, 4장은 천명을 두려워하고 정성을 다하니 하늘의 총명을 통했다는 것, 5장은 황제가 어질고 성스러워 널리 포용하고 사랑이 융성했다는 것이다.

6장은 사신이 와서 황풍(皇風)을 펴고 윤음(綸音)을 두터이 했다는 것, 7장은 온 나라의 영화가 어린이에까지 미쳤다는 것, 8장은 각종 악기를 연주하니 잔치 자리가 화락했다는 것, 9장은 북쪽을 바라보고 태평성세를 노래한다는 것, 10장은 받은 은혜가 무거움에 성수를 축원한다는 것 등이다.

의의와 평가

시의 운(韻)은 동(東)과 통운(通韻) 등을 썼으며, 중국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고 성수를 비는 사대적인 발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문학성이나 가치는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못된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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