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배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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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원종 때 개경환도(開京還都)의 준비를 위하여 개경에 설치하였던 임시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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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원종 때 개경환도(開京還都)의 준비를 위하여 개경에 설치하였던 임시기구.
내용

몽골과의 전쟁중에 강화도로 천도하였던 고려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은 뒤 개경환도를 준비하면서 1268년(원종 9)에 설치하였다.

이보다 앞서 1260년에도 대장군 김방경(金方慶)과 장군 김승준(金承俊)을 출배별감(出排別監)에 임명하여 환도를 준비하게 한 적이 있지만, 아직 도감이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강화도의 무신정권은 여전히 출륙(出陸) 환도에 미온적이었고, 30년에 걸친 끈질긴 항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적 노력을 거듭하여 몽골로부터 개경환도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환도가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몽골에서는 1267년부터 개경환도를 다시 재촉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압력에 직면하여 고려에서는 무신집권자 김준(金俊)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단 개경에 궁실(宮室)을 갖추어놓은 뒤 여름에는 국왕이 그 곳에서 지내다가, 겨울에는 강화도로 돌아오도록 하자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장용(李藏用)의 타협안이 받아들여져 다음해에 이 도감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김준을 중심으로 한 무신정권의 지배층이 개경환도에 끝내 반대하였으므로, 이것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후 개경환도의 문제는 1270년에 원종이 몽골 군대를 이끌고 몽골에서 돌아와 강화도의 무신정권에 출륙령을 내리고, 이에 호응하여 강화도에서 홍문계(洪文系)·송송례(宋松禮) 등이 무신집정 임유무(林惟茂)를 죽임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원사(元史)』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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