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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개념
금속 등의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장식하는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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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금속 등의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장식하는 공예.
내용

이 때 부식을 방지하고 강도를 더해주어 마치 일곱 가지 보물(金·銀·瑠璃·玻璃·硨磲·赤珠·瑪瑙)과 같은 색상이 난다하여 ‘칠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파란’이라고도 하였다.

규석(硅石)이 주성분인 유약(釉藥)은 바탕재료와의 부착력을 높이기 위하여 연단(鉛丹)을 배합하고 초산가리(硝酸加里)라는 용융제와 산화제를 가함으로써 고열에도 잘 녹지 않는 수정분말(水晶粉末) 등을 용해시킬 수 있는 성분으로 기본유약을 만들고, 각종 금속산화물을 혼합하여 다양한 색의 발색(發色) 및 소성온도(燒成溫度)를 낮추는 구실을 함으로써 작업이 용이해진다.

칠보의 특색은 같은 색상이라 하더라도 소성과정 및 바탕재료에 따라 발색이 달라지기도 하므로 그 재료의 열팽창률·수축률·융점 등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칠보예술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은 유약을 전면적으로 다채롭게 입혀 조화시키는 것이고, 색채의 오묘함과 찬란함을 연출하는 색채구사의 창작성에 있다.

칠보유약을 입혀 구워낼 수 있는 바탕재료로는 금·은·단동(丹銅)·순동(純銅)·철·알루미늄·스테인레스·점토·유리 등이 있으나, 유약과 바탕재료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열팽창이 되도록 가까운 것이 바람직하다. 또, 재료에 맞는 유약을 사용해야 하며 유약을 입히는 두께도 재료의 크기 및 두께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초기에 유약을 녹여 붙이는 작업을 위한 열원(熱源)으로는 유약을 녹여 구워내는 간이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즉, 풀무를 백탄에 불이 빨갛게 달게 한 뒤 철판으로 만든 석쇠를 걸쳐놓고 ‘파란’을 입힌 제품을 철판의 중심부에 집어넣어 풀무질을 더하면 용융점에 이르게 된다.

그 뒤 차차 발전하여 화덕을 공방에 미리 만들어 놓고 사용하게 되었고, 요즘에는 용융과정을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관찰구가 뚫려 있고, 온도조절이 가능하도록 온도계가 외벽에 붙어 있는 전기로(電氣爐)가 개발되었다.

칠보는 평면재료에 조금(彫金)된 다양한 재질감 위에 단금(鍛金)한 입체물 등 어디에나 표현할 수 있으며, 작은 주걱이나 붓을 사용하여 유약을 바르는 기법과 고운 망으로 된 체에 넣어 뿌리거나 기타 용구 및 재료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형지칠보(型紙七寶)는 바탕색을 발라 구워낸 뒤 모양을 뚫어낸 형지(型紙)를 붙이고 유약을 뿌려 처음에 의도하였던 깨끗한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 또한, 한정된 부분에만 깨끗하게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압지 등 흡수용지를 사용하여 다른 부분을 덮고 흐르지 않게 하며, 축축한 때도 형이 유지되도록 부착시켜 뿌린 뒤 잘 떼어내고 소성한다.

유선칠보(有線七寶)는 소지에 금속선을 세워 색의 구획을 선명하게 하고 선의 효과를 가미하는 방법인데, 금속선의 칸막이를 cloisonne라 한다. 마블·긁어내기 등은 유약이 녹기 시작할 때에 끝이 뾰족한 기구로 표면을 긁어 색이 섞여 대리석 문양처럼 구워지는 것과 먼저 바른 색을 긁어내고 구운 뒤에 투명유를 발라 구우면 앞서 긁어 선을 표현한 효과가 잘 비쳐 보이는 방법이다.

소성온도의 특성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먼저 불투명유약을 발라 소성한 뒤 투명유약으로 다시 고온 소성하면 밑의 유약이 분출되어 표면에 반점을 찍은 효과가 나는 분유칠보와, 투조(透彫)한 금속소지판 밑에 운모판(雲母板)을 깔고 유약을 올려 구운 뒤 운모판을 떼내어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효과를 내는 투태칠보(透胎七寶)가 있다.

금속의 성질을 이용하여 바탕에 부식방지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 뒤 부식액에 넣었다가 방식면(防蝕面)과 부식면(腐蝕面)의 효과 위에 유약을 바르는 부식칠보는 자유로운 붓놀림의 선들이 효과 있게 드러난다.

바탕에 유약을 발라 소성한 뒤 금·은박지를 입히고 다시 투명유약을 발라 구워냄으로써 금과 은의 밝고 화려한 바탕에 어우러지는 투명유약의 효과를 내는 박칠보(箔七寶)기법 등 칠보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효과적인 기법을 한 작품 위에 여러 가지로 연출해낼 수 있고, 바탕재료의 성질과 유약의 특성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칠보의 특징이다.

다만 유약을 깨끗이 보관하는 일, 유약이 인체에 유해한 점을 감안하여 관리하는 일, 소지를 청결하게 준비하는 일, 유약씻기(水洗)를 잘하여 순도 높은 색상을 표현하는 과정, 올리기〔盛付〕·건조·굽기〔燒成〕 등 전후 처리에 유의하여 균열을 방지하는 일 등을 진행과정에서 단계마다 유의한다면 품격 높고 아름다운 칠보를 제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칠보는 ‘파란’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엿가락처럼 생긴 덩어리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가루를 빻아 올려 구운 것이다. 삼국시대의 금제 장신구에서 처음 나타난 것인데, 저화도(약 500℃ 이하)에서 녹는 것으로 청색 한가지뿐이었다.

그 뒤 조선조에 이르러 파란의 색상이 네 가지 색으로 황색(짙은 노랑), 검정과 남색의 중간색인 감색(紺色), 파란색과 초록색의 중간색인 벽색(碧色), 보라색 계열의 가지색(紫色)이 사용되었다.

이 색들은 온도의 차이와 유약의 두께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어서 고온(600℃∼700℃)일 경우 황색은 금향색(錦香色, 누런색), 감색은 회보라색으로 발색되어 색상은 진하게 되고 어두워진다. 저온일 경우는 전체적으로 엷은 색으로 나타나고 유약이 잘 녹지 않으면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투명한 맛이 적어진다.

파란 유약은 색끼리 섞어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 가지 색의 대비효과가 뚜렷하여 명도대비(明度對比)·한난대비(寒暖對比)·보색대비(補色對比)가 가능하며 어떤 색과 조화시키든지 잘 어울리는 배색으로 화사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면적대비(面積對比)의 효과적 연출로 여인들의 장신구 등에 그 아름다움을 더하였는데, 바탕금속이 매우 얇은 편이었기에 금속이 녹기 전에 소성해 내기 위하여 유약을 얇게 바른 것이 특색이고 소극적인 작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은제 장신구 등에 정(釘)으로 오목새김하든지 은선(銀線, 때로는 꼰 은선)으로 길상문양(吉祥文樣)을 베푼 뒤에 투명유약을 입혀 조화시킨 공예품 등은 매우 격조높은 것으로 여인네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으며 발전하였다.

1596∼1615년 일본 경도(京都)에 거주한 금속공예가인 히라다(平田四郎)가 조선인으로부터 칠보의 기법을 배워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칠보사(七寶師)가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찍이 일본에 칠보제작기술을 전할 정도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일본에서는 싯포야키(七寶燒)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간략하게 칠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에 ‘호도 까는 계절 가을·봄’이라는 제하(題下)에 칠보공예품을 출품, 입선한 김기련(金琦連)은 서독 금속예술대학에서 수업 중이었다. 그는 귀국 후 1972년 김영재·박정옥·송광자·유이지(劉里知)·이혜숙·최원정·하성숙과 함께 칠보예술동인회를 발족시켰고, 1973년에는 신세계화랑에서 창립전을 개최하였다.

그는 또 칠보유약의 개발을 위하여 산업체의 경영진을 일깨워 생산을 독려함으로써 국내에서도 유약이 제작되어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칠보공예품 제작이 일반인들에게도 손쉬워지게 되었으며, 공예전용 화랑을 직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써서 한국칠보공예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금속공예의 초창기에 속하는 이 때 여러 명의 금속공예가들이 칠보공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유이지·최정자(崔貞子)·고승관(高承觀)·오영민(吳英民)·박선희(朴善姬) 등의 연구논문이 출간되고 작품이 다양하게 발표되었다.

한편, 일본에서 환국한 이방자(李方子)가 칠궁(七宮)에 이어 낙선재(樂善齋)에서 명휘원(明徽園)의 박애사업 후원과 저변확대를 위하여 칠보제작실을 운영, 주부·학생들의 호응으로 칠보제작이 활기를 띠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유용하게 쓰였다. 그 뒤 기술은 많이 보급되었으나 전통 있는 한국칠보의 맥을 이어나가기에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었다.

1983년에는 한국칠보작가협회가 창립되어 이방자·김정숙(金貞淑)·김우혜(金優惠)·문순옥(文順玉)·신권희(申權熙)·허충회(許忠會)·고승관·강희(姜希)·최정자·이규현(李圭賢)·김선봉(金先奉)·김영희(金永姬)·김화숙(金華淑) 등이 신세계화랑에서 창립전을 개최한 이래 계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기법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1989년부터 서울 경복궁내 한국전통공예관에서, 1998년부터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서울중요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우리 전통 생활공예기술을 전수하는 전통공예 실기강좌가 개설되어 여러 분야와 함께 전통칠보의 맥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고문헌

「Enamelling에 대한 소고」(유리지,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0)
「조선조 후기 파란에 대한 고찰」(최정자, 홍익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2)
「조선조 후기 법랑에 대한 고찰」(고승관, 경희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5)
「조선조 칠보노리개에 관한 연구」(오영민, 홍익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6)
「칠보에 관한 연구」(박선희, 연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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