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캄보디아국(State of Cambodia), 수도는 프놈펜(Pnompenh)이다. 면적 18만 1035㎢, 인구 1570만 8756명 (2015년 현재)이다.
공용어는 크메르어이고, 종족은 크메르족(90%)·중국인(5%)·기타(5%)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교는 국민의 95%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6세기 캄푸치아통일왕국이 수립되었고, 9세기부터 앙코르왕국이 번영하였다.
1863년 프랑스보호령이 되었고, 1949년 프랑스연합에서 한정적으로 독립하였다. 현재 헹 삼린을 중심으로 하는 캄푸치아인민공화국과 3자연합의 민주캄푸치아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시아누크는 1941년 왕위를 계승, 1945년 3월 독립을 선언하고 1953년 11월에 완전독립을 얻었다.
그는 2년 후 퇴위, 인민사회주의공동체를 결성하여 수상이 되고 1960년 국가주석에 취임하였다. 1957년 영구중립법을 선포, 비동맹외교를 표방하였으며, 1965년부터 미국과 4년간 단교하였다. 1970년 3월 론 놀 수상이 우익 쿠데타를 일으켜 외유중의 시아누크를 축출하고 친미정권을 세웠다.
독재로 치달은 론 놀 대통령은 국명을 크메르공화국(Repubic of Khmer)으로 개칭, 반공친미정책을 펴서 베트남전을 크메르에 끌어들였다. 북경(北京)에 망명한 시아누크는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 망명정부를 세우고, 공산혁명조직 크메르 루지는 론 놀에 대항하여 내전을 일으켰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지군은 프놈펜공략에 성공하여 론 놀 정권은 5년 만에 무너졌다. 캄푸치아를 적화한 크메르 루지는 1976년 1월 민주캄푸치아를 선언, 시아누크를 국가원수에 옹립하였다가 4월에 키우 삼판을 국가간부회의 의장에 앉혔다.
수상 폴 포트와 부수상 겸 외상 이엥 사리가 실권을 장악한 민주캄푸치아정권은 전국민의 노동제, 도시민의 농촌 강제이주, 통화폐지 등 급진정책을 쓰고 약 200만 명을 학살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1975년 5월부터 캄푸치아·베트남 국경분쟁이 일어나 양국은 1977년 단교하고 대규모 군사충돌을 일으켰다.
1978년 12월 캄푸치아구국민족전선(FUNSK)이 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아 폴 포트 정권을 공격, 다음해 1월 수도를 장악하고서 헹 삼린이 이끄는 캄푸치아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81년 4월 총선거, 5월 제4회 인민혁명당대회를 거쳐 6월 국회소집으로 신헌법이 제정되고 국가평의회장과 서기장을 헹 삼린이 겸임하였다.
헹 삼린 정권은 1979년 2월 베트남과 평화우호조약을, 1983년 2월 베트남·라오스와 인도차이나 3국수뇌회담을 가지고 협력협정을 맺어 베트남의 준위성국 상태에 들어갔다. 소련과는 1982년 7월 경제기술원조협정을 맺었다.
북경과 평양을 오가며 망명정권을 이끌던 시아누크, 타이국경지대에서 게릴라항전을 펴고 있는 폴 포트파의 키우 삼판 수상,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F)을 이끄는 손 산 의장은 1981년 9월 첫 3자회담을 열었다.
그 결과 1982년 7월 9일 민주연합정부(민주캄푸치아)의 성립을 선언하고 대통령 시아누크, 부통령 키우 삼판, 수상 손 산의 최고지도부를 구성하였다.
그 해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캄푸치아대표권 표결에서 지지 90, 반대 29, 기권 26표로서 민주캄푸치아에 연속 4년째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1991년 ‘파리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13년간의 내전이 종식되었으며, 1992년 설치된 UN캄보디아 과도 행정기구(UNTAC)의 감독하에 193년 총선이 실시되어, 입헌군주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후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는 새로운 캄보디아 정부가 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쌀과 고무의 농업국, 장기내전으로 경제가 핍박하여 외화수입책으로 캄보디아는 1982년 11월에 앙코르와트사원의 관광을 재개하였다. 1980년 3월 통화제도를 부활하였으며, 화폐단위는 리엘(riel)이다.
2015년 기준 국민총생산은 168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080 달러이다. 2015년 기준 무역량은 수출 77억 달러(천연고무·쌀·후추·목재), 수입 104억 달러(원유·기계류)이다.
우리 나라는 시아누크시대인 1962년 7월 총영사관을 개설하였고, 2년 3개월 후 무역협정을 체결하였으나 북한권투선수 망명거부사건으로 주프놈펜총영사관을 폐쇄하였다.
론 놀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은 1970년 8월 5일 수교합의하였다. 그러나 1975년 4월크메르 루지의 프놈펜장악으로 단교하였다가 1997년 10월 다시 국교를 재개하였다.
우리나라의 대캄보디아 수출액은 6억 5000만 달러고 직물, 수송기계, 농산물 등이 주종목이고, 수입액은 1억 9000만 달러고 섬유, 임산물, 비철금속제품 등이 주종목이다.
한편, 북한은 1964년 12월 28일 수교합의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