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아 턱이 져 있다. 관직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망건 위에 썼다. 탕건은 옛날의 건 또는 두건이 중국의 조모(早帽)·복두(幞頭)·사모(紗帽) 등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당건(唐巾)’이 우리나라에 옮겨지면서 탕건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중국에서는 마포나 사로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말총으로 만들었다. 탕건은 원래 독립된 하나의 관모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관직자가 평상시에 관을 대신하여 썼고, 망건의 덮개, 입모(笠帽)의 받침으로 되었다.
또한, 탕건은 목침에 서랍을 만들어 보관할 정도로 늘 몸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였다. 탕건은 속칭 ‘감투’라고도 하여 벼슬에 오르는 것을 ‘감투쓴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감투는 턱이 없이 민틋하게 생긴 것으로 탕건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