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보문화유물 제93호. 북한의 사적 제41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문화유물 제93호로 변경되었다. 둘레 2,425m, 높이 7m. 군사의 요충지이며 교통의 중요한 거점인 평산군 산성리의 예성강을 끼고 솟은 태백산에 있는 산성으로 394년(광개토왕 4) 백제의 침입에 대비하여 남쪽지방에 쌓았다는 7개 성의 하나로 비정된다. 조선시대에 성을 보수하기 전까지는 성황산성(城隍山城)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때 쌓은 대곡성(大谷城)으로 추정된다.
태백산의 험한 봉우리와 능선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동쪽은 예성강의 절벽을 이용하여 성벽으로 삼았다. 성벽은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밑으로부터 4단까지는 대체로 큰 돌로 계단식으로 쌓았고, 그 위로부터는 성돌의 면과 선을 정연하게 맞추면서 곧추 쌓아올렸다.
성벽이 밖으로 내민 5개소에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을 설치하였으며, 성가퀴[城堞]는 이미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홍예형(虹霓形)으로 냈는데, 동문과 서문에는 18세기에 고쳐 세운 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동문은 잘 다듬은 너비 2.4m의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합각식 단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에는 정면에 ‘先得樓(선득루)’라고 새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곳은 성 안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동문 가까운 곳에는 수구문(水口門)이 설치되었고, 서문에는 너비 3.07m의 위 홍예문 축대에 동문루와 꼭같은 규모의 합각식 건물을 세웠다.
성 안에는 물원천이 풍부하여 평양 대성산성(大城山城)의 못 형태와 비슷한 인공연못과 우물이 있으며, 왕건이 고려를 세울 당시의 주요 신하들을 제사하던 사당인 태사사(太士祠) 건물이 있었는데 6·25 때 파괴되고 비석만 남아 있다. 이 밖에 산성 안에는 망월사(望月寺), 군기고, 북창 등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