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기는 목관악기로 쇄납(哨吶) 또는 호적(胡笛)이라고도 하며, 속칭 날라리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부터 『국조오례의』의 전정고취(殿庭鼓吹)와 『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정대업(定大業)」에서 소무(昭武)ㆍ분웅(奮雄)ㆍ영관(永觀)장에도 썼고, 그 뒤에는 취타(吹打)ㆍ농악, 불가(佛家)의 재(齋)에도 연주되어 오늘에 이른다.
태평소를 만드는 법은 오매(烏梅)ㆍ산유자(山柚子)ㆍ대추나무ㆍ황상(黃桑)ㆍ황양(黃楊) 등 단단한 나무를 쓰는데, 관의 길이는 30㎝ 못되게 하여 위는 좁고 차차 퍼져 아래를 굵게 한다.
지공(指孔)은 모두 8공이고, 그 중에서 제2공은 뒷면에 있다. 갈대로 만든 작은 혀(舌)를 동구(銅口)에 꽂고, 끝은 나발 모양의 동팔랑(銅八郎)이 달려 확성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이 악기로 전라도 지방의 시나위를 불었던 사람은 방태진(方泰鎭)과 한일섭(韓一燮)이다. 방태진은 1950년대 후반부터 여성국극단의 악사로 따라다니며 국극의 장면이나 중요한 대목을 태평소의 즉흥가락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그 나름대로 중심가락을 만들고 서용석(徐龍錫)에게 전하여 주었다.
방태진의 시나위는 굿거리ㆍ자진모리ㆍ동살푸리ㆍ휘모리로 짜여져 있고, 가락은 그때그때마다 즉흥가락이며 몇 개의 대표적인 가락들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한편 한일섭의 태평소 시나위는 그 자신의 아쟁이나 판소리의 가락들을 태평소에 옮겨 불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가락은 박종선(朴鍾善)ㆍ김동진(金東振) 등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대표적인 가락들은 몇 가락뿐이고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주장단은 굿거리와 자진모리이다.
방태진의 가락이 경쾌하며 엇먹고 나오는 가락이 많고 리듬을 타는 시나위라면, 한일섭의 가락은 한음 한음을 길게 끌며 선적(線的)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시나위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