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문제연구회 ()

목차
관련 정보
근대사
단체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
이칭
이칭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
단체
설립 시기
1925년 11월
해체 시기
1931년경
설립자
송진우|신흥우|유억겸 외
설립지
서울
소재지
서울
내용 요약

태평양문제연구회는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이다. 1925년에 개최된 제1차 태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국내에 돌아온 신흥우, 유억겸, 송진우 등은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를 설립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5년 11월 28일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모임이 열렸다.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 및 『동아일보』 ‧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이승만과 연결된 비밀조직인 흥업구락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목차
정의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
참고문헌

단행본

고정휴, 『태평양의 발견 대한민국의 탄생』(새미, 2021)

논문

김경일, 「식민지 시기 국제 민간 기구의 내용과 성격- 태평양문제연구회(IPR)와 태평양회의를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 3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4)
고정휴,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와 조선사정연구회」(『역사와현실』 6, 한국역사연구회, 1991)
주석
주1

아시아 · 태평양 지역에서 국제적인 비정부 기구(INGO)의 효시로 평가받는 ‘태평양문제연구회(IPR: 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1925~1961)’가 1925년부터 2~3년 주기로 개최했던 회의를 가리킨다. 이 회의에는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국가와 식민지 민족들과 더불어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영국 · 프랑스 · 소련 등이 참여함으로써 20세기 전반기 최대의 국제적 민간 회합으로서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우리말샘

주2

민족주의 운동가 중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 경기 지역 출신 혹은 임시정부 계열을 가리키는 말

집필자
류시현(광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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